[교통문화도 월드컵시대]독일의 면허/초보때 철저교육

  • 입력 2001년 11월 29일 18시 52분


5일 오후 1시 독일 베를린 커펄스탠 거리의 주베를린 대한민국영사관에서 10분가량 걸어가자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반쯤 파괴된 빌헬름 황제 기념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교회가 위치한 브라이트샤이트 광장은 주변 쇼핑몰과 우반(U-Bahn) 이라 불리는 베를린 시 지하철의 중앙역이 위치해 있어 늘 보행자와 자동차들로 발딛을 틈이 없다. 하지만 베를린 시내에서도 가장 복잡하다는 이 곳에 폴리차이(Polizei·경찰관) 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귀를 기울여보니 경적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교통경찰관과 경적이 없는 것이 뭐가 이상해요? 신호등과 교통법규가 있잖아요.”

택시기사 워털린씨(44)는 오히려 기자의 질문이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번 법규위반하면 2년 연장▼

▽임시면허제도〓독일 운전자들은 유럽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운전자로 꼽힌다. 독일의 교통전문가들은 독일 국민이 이러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70년대말 도입된 2년간의 임시면허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은다.

응급구조 교육에서 시작해 운전면허 필기시험과 실기 교육까지 받고 실제 시험에 응시, 합격할 때까지 드는 비용은 1500∼3000마르크(한화 85∼170여만원). 하지만 거액의 비용과 노력을 쏟아부어 운전면허 시험에 최종 합격하더라도 초보 운전자에겐 정식 면허증이 아닌 임시면허증과 1년간 자동차 뒷유리에 붙이고 다녀야 하는 초보자 스티커만이 쥐어진다.

사실 임시면허증은 어려운 운전면허 시험을 통과한 합격증의 의미보다는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독일에서 생활하지 못한다 는 경고장에 가깝다.

임시운전면허기간 2년동안 속도제한 위반, 신호위반 등을 단 1회만 저질러도 운전자는 450∼500마르크(한화 26∼29만여원)를 내고 독일교통안전협의회(DVR)가 지정한 운전학원이 실시하는 교육 세미나에 참가해야 한다. 2∼4주간 매일 4시간가량 실시되는 교육은 지각없이 모두 참여해야 하며 하루라도 빠지면 세미나를 개설한 다른 운전학원에서 다시 교육비를 내고 처음부터 들어야 한다. 물론 참석하지 않으면 운전면허는 취소된다.

또다시 법규를 위반하면 교육 세미나 이외에 교통심리 전문가로부터 정신과 테스트까지 받아야 한다. 반복해서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까지 취급되는 곳이 바로 독일이다. 더욱 가혹한 것은 교육 세미나나 정신과 테스트와는 별도로 임시운전 면허기간이 4년으로 연장된다는 것.

지난해 교육 세미나를 들었다는 한인교포 정모씨(32)는 “10여명만이 둘러앉아 3인 1조로 상호간의 운전행동을 관찰하고 문제점을 토론한다”며 “엄격한 규율 속에 자신의 교통법규 위반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교통법규 위반은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엄격한 처벌과 교육〓정식 면허증을 받더라도 독일 운전자의 교통법규 준수의식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엄한 벌점체계와 이에 따르는 교육 세미나 때문이다. 독일의 벌점제도에서 면허정지 기준은 누적벌점 14점이상, 면허취소 기준은 누적벌점 18점이상이다.

▼2번 넘으면 정신과 테스트까지▼

면허취소 기준벌점과 개별 교통법규 위반벌점을 비교해볼 때 벌점의 가중치는 국내와 비슷하지만 한번 기록된 벌점이 5년이상 무사고·무위반 운전을 했을 경우에만 지워지도록 돼있어 운전자의 부담은 상당하다. 교통법규 운전자가 벌점을 지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운전학원에서 개설중인 교육 세미나에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것으로 벌점 2점을 감해준다. 벌점이 14점이상을 넘은 사람은 의무적으로 교육 세미나에 참가해야 하지만 벌점은 지워지지 않는다. 14점이나 18점을 넘어 면허정지, 면허취소를 당했을 경우엔 6개월내에 정신과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이달초 이 테스트를 받은 대학생 베르디 하프씨(33)는 “교육 세미나를 다 받은 뒤에도 정신과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운전대를 못 잡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테스트 통과를 도와주겠다는 심리학자나 심리학과 학생들의 신문 광고가 실리기도 한다”고 귀뜸했다.

독일연방정부 보건건설교통부 자문위원 리버만박사(72)는 경찰관의 단속이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라면 교육은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 이라며 “월드컵을 앞둔 한국도 교통안전문화 정착을 위해 운전자 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철저한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고 강조했다.

<베를린〓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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