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성난 농심 해법이 안보인다

  • 입력 2001년 10월 31일 16시 59분


“세금 낼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 나락이라도 받아줘야 할 것 아니야.”

“세금을 벼로는 대신 받을 수 없어요.”

요즘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세금 수납 창구에서는 정부의 낮은 쌀 수매가에 항의해 종합토지세(종토세)를 현물로 내겠다는 농민들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무원들의 실랑이가 잇따르고 있다.

또 강원 정선과 경남 거창에서는 배추 가격 폭락 등에 화가 난 농민들이 트랙터로 배추밭을 갈아엎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풍요로워야 할 수확의 계절에 ‘성난 농심(農心)’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농민 반발과 주장=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정광훈·鄭光勳·전농)은 최근 열린 상무위원회 결정에 따라 종토세 등을 현물로 납부하려는 현물 납부 와 관공서 마당에 볏가마를 쌓아놓고 시위를 벌이는 ‘적재투쟁’ 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가기로 했다.

전농 경남도연맹은 30일과 31일 진주시 등 9개 시군에서 종토세 현물납부를 실제 행동으로 옮긴데 이어 시군과 농협 등지에서 적재투쟁을 벌이고 있다.

전북도연맹 산하 정읍농민회는 29일 군내 15개 읍면에 벼 2만2000여 가마를 쌓아놓고 적재투쟁에 들어갔으며 광주 전남연맹과 강원, 경기, 충남, 충북연맹 등 대부분의 농민회도 적재투쟁을 벌이고 있다.

경남도연맹 강기갑(姜基甲) 의장은 “농업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쌀시장을 개방해 최소한의 소득 보장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농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농정을 펴지 못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정부의 쌀 수매분 575만석 외에 농협과 민간의 미곡종합처리장(RPC)이 매입하는 950만석은 40㎏짜리 한가마당 5만원선으로 최저 생산비에도 못미친다고 반발하고 있다.

전농은 △300만석 이상의 신곡(新穀) 대북한 조기 지원 △농협과 RPC 매입분은 정부수매가 2등품 가격(5만7760원) 보장 △계절에 따른 가격 변동폭이 8%가 될 때까지 정부 보유 물량의 공매 중단 △쌀 생산 감축을 기조로 한 정부의 농정 철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전농측은 11월 한달간 각 지역 단위로 적재투쟁 등을 벌인 뒤 12월 2일 서울에서 농민 2만여명이 참가하는 ‘쌀 생산비 보장, 세계무역기구(WTO) 쌀수입 반대, 개방 농정 철폐 전국농민대회’를 열기로 했다.

한편 봄 가뭄으로 지난 여름 5t트럭 1대분에 600만∼800만원을 호가하던 배추값이 10월들어 100만원대 이하로 떨어지면서 배추를 폐기처분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또 거창과 전북 무주, 경북 구미 등의 농민들은 불량 종자 때문에 고랭지 배추농사를 망쳤다며 수십만평의 배추를 폐기처분하기로 했다.

▽정부 입장=WTO 협정에 따라 정부 쌀 수매 보조금을 해마다 750억원씩 줄여나가야 하는 데다 2004년 쌀시장 개방에 관한 재협상을 앞두고 수매가를 계속 올릴 경우 대외 경쟁력이 더욱 약화된다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또 농민단체가 주장하는 대북 쌀 지원은 남북관계 개선과 국민적 합의만 이뤄진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쉽게 이뤄질 가능성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

정부는 농민단체가 주장하는 계절진폭(벼 수확기 직전과 수확기 직후의 가격 차)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보유 쌀의 공매도 대폭 줄였으며 9월 13일 이후에는 아예 중단한 상태라고 밝혔다.

농림부 관계자는 “쌀 생산량과 수입물량의 증가로 재고미가 늘고 소비는 급격히 줄어 수요 공급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현재 상황에서는 정부로서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 진단=경상대 김진석(金鎭碩·농업경제학) 교수는 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쌀 소비를 촉진하고 생산량을 조절해야 하며 양보다는 질 위주의 농정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현재 7∼8% 수준인 쌀을 이용해 다른 식품을 만드는 가공 비율을 높여 쌀 소비량을 늘리고 쌀 대신 자급이 되지 않는 다른 식량작물을 심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대북 쌀 지원을 통해 시장의 쌀 물량을 줄이고 생산자 단체인 농협으로 하여금 쌀 구매 가격을 조금 더 후하게 책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진주·광주·대구·청주=강정훈·정승호·이권효·장기우기자>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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