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여성근로자 '간접 성차별' 큰코 다친다

  • 입력 2001년 8월 6일 18시 32분


사무직 여성 근로자 A씨(38)는 최근 부장 승진에서 누락됐다. 지방 근무를 한 적이 없어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은 것. 남편과 자식 때문에 혼자 지방에 갈 수 없었던 A씨는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고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A씨와 같은 여성 근로자들이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7일 공포돼 11월부터 시행될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은 ‘간접 성차별’에 대해 노동부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지방 근무를 고과에 가산하는 것은 직접적인 차별은 아니지만 여성에게 ‘사실상’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규정이기 때문이다.

▽‘간접 차별’이란〓채용 임금 승진 해고 등의 기준이 △명백히 남녀를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특정한 성에 불리한 결과를 낳게 되고 △그 기준이 직무와 직접 연관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간접 차별 논란은 71년 미국 대법원이 교도소 관리를 채용할 때 신장과 체중 기준을 두는 것이 성차별이라고 판결하면서 불거졌다. 남성은 전체의 1%만이 체격 기준에 미달하지만 여성은 41%나 미달돼 이 같은 기준이 명백히 여성의 취업 장벽이며 교도 업무에 굳이 건장한 체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

노동부 신명 근로여성정책국장은 “간접 차별의 개념은 99년 남녀고용평등법에 도입됐으나 규정이 모호해 사실상 사문화됐다”면서 “개정안이 3가지 원칙을 명확히 규정해 ‘구조적이고 내면화된 성차별’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어떤 경우가 해당되나〓채용 기준에 신체조건을 포함시키거나 군필자를 우대하는 것이 흔한 예다.

사무직 승진 규정에서도 이 같은 차별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은행의 인사제도. 93년 은행들은 남녀 행원을 분리 모집하는 것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라는 노동부의 유권해석 이후 ‘종합직’과 ‘일반직’으로 나눠 행원을 채용하고 있다.

종합직은 승진의 상한선이 없는 대신 해외 및 지방근무를 해야 하고 일반직은 지방근무를 거부할 수 있는 대신 승진이 제한됐다.

한국여성개발원 김엘림 박사는 “은행의 채용 관행은 간접 차별”이라고 말했다. 가사와 육아 등을 담당하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방 근무에 자유롭지 못하므로 종합직 직원이 되기가 사실상 힘들고 지방 근무를 승진의 요건으로 삼는 것도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것.

부부 사원을 우선 정리해고하는 것도 대부분의 여성이 피해를 보게 되므로 문제가 된다.

▽소송 줄 이을 듯〓간접 차별이 인정되면 부당해고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채용 임금 승진에서 불이익을 주면 500만원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그러나 차별 여부는 최종적으로 법원이 판정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국내에서 이와 관련한 판례가 없는 것도 여성계의 고민이다.

99년 농협에서 부부 사원을 우선 해고한다는 방침에 따라 해고된 여성 근로자 3명이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1심에서 “부부 중 누가 그만둘지는 선택의 문제”라며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왕인순 정책위원장은 “근무성적평정이나 원격지 근무와 관련된 ‘보이지 않는’ 차별은 거의 다 간접 차별”이라며 “대표적 사례들을 모아 법정 투쟁으로 ‘선례’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업주들도 간접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11월부터 홍보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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