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경실련 이석연총장 '반성' 화제

  • 입력 2001년 6월 15일 18시 23분


“시민단체는 정치권력과 긴장 갈등관계에 있어야 하며 협조가 주목적이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의약분업 시행과정에서 시민단체는 정부의 무원칙과 준비 소홀을 사전에 감지했음에도 전면 재검토 요구나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오히려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함으로써 정부의 전위대 역할을 한 꼴이 됐습니다.”

대표적인 시민단체 가운데 하나인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 이석연(李石淵·47·사진) 사무총장은 최근 낸 에세이집 ‘헌법등대지기’에서 시민운동 단체의 겸허한 자기반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사무총장은 이 책에서 “현재 한국의 시민운동은 초법화 경향, 시민단체나 시민운동가들의 관료화, 권력기관화 경향과 연대를 통한 센세이셔널리즘, 무오류성의 환상에 젖어 뜻 있는 시민들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사무총장은 15일 이 글을 쓴 배경에 대해 “의약분업의 경우 시민단체들은 처음에 선의로 밀어붙였으나 진행과정에서 정부쪽에 전혀 준비가 없고 무원칙하게 대처하고 있음을 알았으면서도 원칙에만 집착해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보수가 인상 등과 관련해 지적은 많이 했지만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 사무총장은 “의약분업 파행과 관련해 최근 ‘시민단체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시민단체는 정부나 의사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반성하고 노선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의약분업을 앞장서서 지지해 온 경실련 책임자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사무총장은 또 시민운동 스스로가 권력기관화 관료화되는 경향을 지적하며 “1년반 동안 경실련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스스로 깜짝 놀랄 때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시민단체의 주장은 무조건 옳다’고 평가하며 시민단체를 너무 ‘받들어’ 주는 경향이 있어 자기 도취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시민운동은 법치주의, 적법절차,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준수하는 틀 내에서 이뤄져야 국민적 신뢰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며 “지난해 총선연대의 활동은 당시 국민정서에 부합했으나 불법이란 점에서 논리기반을 약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의 연대 파업에 대해서도 “시민단체는 불법 파업이 적지 않았던 민주노총 파업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시민운동이 연대를 통한 센세이셔널리즘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총선연대를 계승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머릿수에 따른 세 과시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사무총장은 언론개혁 문제와 관련해 “경실련이 언론개혁시민연대에 속해 있긴 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언론개혁 논의에 대해 내부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적이 없다”며 “언론 개혁의 원론적인 목표에는 찬성하지만 시기 절차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장에 대해 시민단체 내부에서는 “조직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독불장군식으로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사무총장은 “앞으로 연대의 틀 안에서 시민운동의 변화를 위해 애쓰겠지만 그게 아닐 경우 연대회의 탈퇴 등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80년 이후 법제처와 헌법재판소에서 근무하다 94년 헌법소송 전문 변호사로 일해 ‘헌법 지킴이’로 불린다. 변호사로 130여건의 헌법소원 사건과 공익소송에 참여, 이중 30여건에 대해 위헌결정과 법령의 개폐를 이끌어냈다. 99년 11월 경실련 사무총장을 맡았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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