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의약담합-처방전 남발 여전

  • 입력 2001년 2월 4일 18시 46분


서울 강서구 D정형외과. 관절염을 앓는 주부 유모씨(53)가 “지난번과 같은 처방전을 써 달라”고 하자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가 의사진료 대신 약국에서 약을 받을 수 있는 처방전을 필요로 하자 병원이 단골 고객의 편의를 봐준 것.

서초구 Y의원은 환자들에게 처방전을 주며 “병원건물 오른쪽으로 돌아 편의점 앞 A약국으로 가라”고 유도한다. 의약분업 본격시행 6개월이 지난 지금 일부 병원과 약국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사례들이다.

▼석달새 불법 1484건 적발▼

▽불법행위, 피해자는 국민〓의사와 약사간 담합과 임의조제는 분업의 성패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불법행위. 정부가 시도와 함께 의약분업 특별감시단을 만들어 단속하고 있지만 뿌리가 뽑히지 않고 있다.

서초구 Y의원 부근의 A약국은 환자에게 약을 조제해 주는데 1∼2분도 안 걸린다. Y의원과 미리 ‘얘기’가 돼 있어 주요 증상별 처방내용을 받아 약을 미리 조제해 놓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Y의원의 처방전을 80%이상 소화한다.

환자들은 “집 근처 약국에 가면 안되느냐”고 묻지만 간호사는 “다른 곳에 가면 약이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약을 찾아 돌아다닐 불편을 겪지 않으려고 환자들은 대부분 A약국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의원은 처방전도 약국용 1부밖에 발행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환자의 약국선택권은 실종된 지 이미 오래다.

종로구 B의원은 아예 직접 약을 준다. 분업시행 뒤 의료계가 장기간 파업을 벌일 때 “불편하지 않게 해 준다”며 남아 있는 의약품을 써오다 파업이 끝난 뒤에도 원내조제를 계속하는 것.

보건복지부와 16개 시도가 지난해 10월30일부터 3개월간 실시한 단속 결과 이런 유형의 불법행위가 1484건이나 적발됐다.

▼약품 오남용 감소 속단 일러▼

▽분업 효과는 있나〓복지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접수된 지난해 8월치 처방전 10만1942건을 분석한 결과 처방약 수와 항생제 처방빈도가 약간 줄어 약품 오남용 방지라는 분업의 효과가 예상보다 빨리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1회 처방에 사용되는 약 종류가 분업 전의 평균 4.2종에서 4.1종으로 줄었으며 항생제 처방률 역시 45%로 분업 전(59%)보다 감소했다는 것.

그러나 이는 의료계의 파업기간과 겹쳐 분업 정착의 근거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그보다는 오히려 의약담합으로 인해 처방전이 남발되고 약 사용이 늘어났다는 견해가 많다. 경기 안양시의 약사 이모씨는 “약을 1500종 이상 준비했지만 의원과 가까운 약국으로 환자가 몰리고 있다”며 “처방료와 약값이라는 경제적 이득이 있는데 금방 약 처방이 줄겠느냐”고 반문했다.

▼대체조제 완화등 보완필요▼

▽여전한 환자 불편〓분업이 정착하면서 환자가 약을 못구해 여러 약국을 오가는 불편은 많이 줄었지만 처방전 유효기간(대부분 3일) 내에 약을 조제받지 못해 결국 처방전을 버리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다.

근막증으로 최근 병원을 찾았던 직장인 정모씨(38)는 유효기간이 3일로 적힌 처방전을 받았으나 직장일 때문에 약국에 갈 시간을 내지 못해 결국 약을 못먹고 말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한 처방전 소실률이 10%를 넘는다는 것.

대체조제 관련 규정이 엄격한 것도 문제. 피부과 치료를 받은 천모씨(여)는 “2주일분의 약 처방을 받았는데 필요한 성분 6종 가운데 소화제 1종만 준비가 안돼 약사가 의사에게 대체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소화제 등 보조 역할을 하는 성분은 대체조제를 폭넓게 허용해야 불편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약국이 오후6시 넘어서 처방전을 들고 오는 환자에게 조제료를 50% 이상 더 받는 규정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조제료는 1일치가 1440원, 3일치가 2080원. 오후 6시 넘어서 약국을 찾는 환자는 응급환자이거나 아니면 퇴근길에 약국에 들르는 경우인데 단순히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돈을 더 받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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