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국내거주 외국인 '인권 死角' 신음

  • 입력 2000년 12월 10일 18시 30분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한국의 ‘인권시계’는 과연 몇 시일까.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 한국인들의 인권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도 상당히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외국인들의 인권은 일부 선진국 국민을 제외하면 한마디로 낯부끄러울 정도다. 특히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들은 그들 자신의 약점 때문에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12월10일)을 계기로 국내 3대 소수집단(Minority)으로 꼽히는 외국인 근로자와 중국동포(조선족), 화교 등의 인권실태를 집중 점검한다.

▽한국의 ‘마이너리티’들〓방글라데시에서 유수한 대학을 졸업하고 4년 전 한국에 온 투툴(27). 한때 ‘코리안 드림’을 꿈꾸기도 했지만 입국시 브로커에게 건넨 알선료 800만원을 갚은 것 외엔 이룬 것이 거의 없다. 게다가 더욱 억울한 것은 동두천 의류공장에서 일할 때 한국인 간부가 동료를 때리는 것을 말리다 그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두 팔이 부러진 것. 8개월 가량 치료를 받았으나 두 팔은 예전 같지 않다. 보상금 한푼 받지 못한 채 쫓겨났지만 불법체류자인 그는 항의 한번 제대로 못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경찰에 신고돼 강제 출국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인 중국동포라도 외국인 근로자와 처지가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단지 한국말을 할 수 있어 억울함을 호소하기가 다소 쉽다는 것뿐이다.

5년전 ‘조국’을 찾은 중국동포 최모씨(35·중국 랴오닝성 거주). 지난해 11월 경기 부천시의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프레스로 부품을 찍어내는 일을 하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여덟 손가락을 잃었다. ‘인생’ 자체를 잃었지만 보상금은커녕 밀린 임금도 받지 못했고 더 이상 받아주는 직장도 없었다. “그동안 밀린 임금은 입원치료비(850만원)로 모두 썼다”는 것이 그가 회사측으로부터 들은 설명이었다.

경기 성남시 태평로2가 주민교회 지하 1층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 중국동포의 집(031―756―2143)’엔 투툴씨나 최씨같이 쫓겨나 오갈 데 없는 외국인 근로자들로 항상 붐빈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8일 오전, 몸이 성치 않아 일하러 나가지 못한 ‘이방인’ 10여명이 양지바른 곳에 모여 햇볕을 쬐거나 쪽방에 누워 지친 몸을 달래고 있었다.

말이 거창해서 ‘집’이지 2, 3평 가량의 쪽방 5개가 전부다. 환기구 하나 없는 쪽방 벽면마다 이곳에 기거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땟물에 찌든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60, 70년대 구로공단의 ‘벌집’을 연상케 한다. 방마다 보통 10∼20명씩 숙식한다는 게 이 집을 운영하는 김해성(金海性)목사의 설명.

외국인 근로자는 아니지만 화교도 차별과 멸시의 대상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은 화교들에게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불모지’나 다름없다. 이들의 한반도 체류역사는 한 세기를 훌쩍 넘어서고 한때 규모가 늘기도 했지만 현재 남한거주 화교는 2만2000여명에 불과하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화교자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부동산 구입 등 각종 규제가 풀렸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국내에서 태어나 국내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데다 설령 일자리를 구해도 승진은 꿈도 못꾼다.

▽“이들도 인간이다”〓90년대 들어 몰려들기 시작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10월말 현재 27만5290명.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2%를 넘는다. 이 가운데 법적으로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불법체류 근로자가 17만9990명으로 전체의 65.4%. 외국인 근로자들이 저임금이나 임금체불 등 일부 내국인들이 겪는 고통을 넘어서서 이유 없이 맞거나 모욕을 당하고 심지어 숨지는 사태까지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적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목사는 “국내거주 외국인 역시 우리가 껴안고 함께 살아야 할 대상으로 이들의 인권은 바로 ‘우리의 인권 수준을 비추는 거울’”이라며 “중국 국적의 조선족과 화교를 포함한 외국인 고용허가제 등의 법적 보호장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하종대·민동용기자>orionha@donga.com

외국인 근로자 현황
연 도전 체합법 체류자불법 체류자
1998157,630명58,100명 99,530명
1999217,230명81,900명135,330명
2000.10275,290명95,300명179,990명

국적별 불법체류자 현황(2000년 10월말 현재)
나 라총 수중 국방글라데시몽 골필 리 핀태 국기 타
인 원179,990명 90,320명 14,180명 12,650명 12,470명 11,980명 38,390명

(자료: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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