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 '분통'

  • 입력 2000년 12월 3일 18시 57분


태평양전쟁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유골 7643구는 어디로 갔나?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회원들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유골인도’ 청구소송을 지난달 28일 서울지법에 냈다. 그동안 주로 일본을 상대하던 유족들이 국내기관을 상대로 한 것은 처음. 이는 한국 정부가 50년이 넘도록 이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은 데 대한 따가운 질책이다.

▽한국정부는 유골을 찾아내라〓올해 3월 일본 후생성으로부터 아버지의 전사 사실을 확인한 조영순(趙英順·47·인천 강화군)씨는 부친의 유골이 48년 5월31일 부산항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남편이 사할린 등지에 살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평생을 기다려 온 91세의 어머니도 이 소식을 듣고 밤새 통곡했다. 조씨는 “50여년 전 아버지 유골이 돌아왔다는데, 그것도 모른 채 살았으니. 어찌나 억울하고 분한지…”라며 울먹였다.

일본정부는 그 동안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7643구를 48년 2월과 6월 배편으로 ‘조선과도정부 외무부 부산연락사무소’ 등에 인도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우리 외교통상부는 “한국전쟁 등으로 관련기록이 유실됐다” “일본측이 부산항에 유골을 내려놓지 못하고 대한해협에 뿌렸다는 소문이 있다”며 진상규명 노력 없이 ‘모르쇠’로 일관해 온 것.

▽사망신고도 못한다고?〓“나라 잃은 상황에서 전쟁터로 끌려나가 전사한 것이 확인됐는데 실종신고를 하라니요?”

1942년 아버지가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박매자(朴梅子·57·여·서울 마포구 망원동)씨는 지난해 여름 고향인 경남 양산의 토지개발 과정에서 아버지 명의의 땅이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부친 박면수(朴冕銖)씨의 사망신고를 못해 상속 등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한 상태. 아버지의 전사기록을 찾아 보훈처, 국방부 등 ‘가능성이 있는 기관’을 모두 돌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답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는 말뿐이었다.

박씨는 천신만고 끝에 일본 후생성에 문의해 ‘부친이 1944년 남양군도 메레욘에서 전사했고, 1948년 2월3일 유골이 송환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박씨는 정부기록보존소의 ‘피징용 사망자 명부’와 일본 후생성 확인서 등을 첨부해 울산지법에 제출했으나 다시 “사망을 인정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일반 행방불명자처럼 실종신고를 신문에 낸 뒤 1년을 기다려 사망처리를 하라는 것.

박씨는 “일본으로부터 인도받은 유골을 찾아내지는 못할 망정 전사 사실을 확인해준 외교문서까지 모른 체하니 도대체 이게 어느 나라 국가기구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소한의 조사도 안한 정부〓박씨 등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들은 최근 48년 당시의 동아일보에서 ‘2월과 6월 두차례 7000여구의 유골이 부산항에 들어왔고 합동위령제를 지냈다’는 기사를 찾아냈다.

그동안 “확인할 자료가 없다”고 발뺌하던 외교부도 기자의 계속된 추궁에 “65년 한일협정 때 7643구 유골의 국내반환을 인정했고 일본에 남은 유골 1135명분의 인도협상만 진행했다”고 마지못해 시인했다.

이들 유족은 “이 일을 민간단체에만 맡길 게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외교채널을 통해 미군정 당시의 자료를 조사하고 유골을 인도받은 외교부 담당자의 신원 추적과 특별법 제정 등의 노력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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