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차량흐름 막는 신호체계

  • 입력 2000년 11월 17일 18시 23분


길을 새로 만들거나 넓히는 것만이 교통체증을 줄이는 유일한 대책은 아니다. 88년 서울올림픽 때와 지난달의 아시아유럽정상회의(아셈)기간처럼 차량 홀짝제나 10부제 운행, 그리고 교통신호등을 이용한 신호등 연동제나 가변차로제 등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특히 신호등 연동제 등의 보조적인 방안을 외면하는 곳도 적지 않아 운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울산∼경주간 국도의 경우〓16일 오후 4시 울산∼경주간 국도 7호선상의 울산 북구 농소2동 강북교육청 입구 신호대. 울산에서 경주방면으로 차를 몰고 가다 이곳에서 빨간 신호등에 걸려 정차했다가 파란 신호등으로 바뀐 뒤 출발했다. 그러나 50여m앞 원지삼거리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는 바람에 다시 서야 했다.

울산공항 앞에서 경북 경주시 경계지점까지 14㎞ 구간에 설치돼 있는 신호대는 모두 13개. 승용차로 30분도 안 걸릴 거리를 신호대의 절반 이상인 7개 신호대에서 빨간 신호등에 걸리는 바람에 50분이나 소요됐다.

토요일과 공휴일, 그리고 출퇴근시간의 상황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한참을 기다려 신호등이 바뀐 뒤 출발하면 이내 바로 앞의 신호대에서 다시 걸리기 일쑤여서 이 거리를 통과하는 데 평균 1시간30분 소요된다.

울산과 경주를 잇는 유일한 국도인 이 구간에 차량이 많이 몰리는 탓도 있지만(올 9월말 현재 하루 왕복 6만3000여대) 차량 흐름에 따라 신호등이 차례로 바뀌는 신호등 연동제가 실시되지 않아 차량정체가 가중된다는 게 운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이 구간의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572억원을 들여 내년 3월 완공예정으로 96년 12월부터 왕복 4차로를 8차로로 확장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신호등 연동제나 가변차로제 등 교통대책의 ‘소프트웨어’는 간과한 채 도로를 확장하는 ‘하드웨어’에만 초점을 맞춘 셈이다.

▽문제점〓전국 대부분의 자치단체 간선도로 가운데 70∼80%는 중앙교통관제센터에 의한 신호등 연동제가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울산시는 96년 교통관제센터에 의한 신호등 연동제를 2002년까지 실시하기 위해 행정자치부(당시 내무부)로부터 165억원의 예산까지 배정받았으나 “교통관제센터가 들어설 울산지방경찰청사가 2004년 9월 완공예정이기 때문에 청사 완공 이전에 관제센터를 설치하면 이전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며 사업을 연기했다.

교통관련 예산의 편성과 집행이 자치단체와 경찰로 이원화돼 있는 것도 교통대책이 원활하게 시행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광주시의 경우 매년 6억∼7억원의 예산만 배정하고 있어 일반 신호등을전자식으로 일괄 교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실질적인 교통소통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전남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경남의 한 공무원도 “민선 자치제 실시 이후 단체장들이 시민들에게 가시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도로개설에만 치중하고 눈에 드러나지 않는 교통체계 개선 사업비는 경찰에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개발연구원 분석〓교통개발연구원이 분석한 98년도 우리나라의 교통혼잡비용은 총 12조1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98년도 449조5000억원)의 2.71%이며 물류비용은 GDP의 15.5%인 69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에 따른 교통난 해소 방안의 하나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정보 통신 전자기술을 결합한 지능형교통시스템(ITS)으로 현재 대전과 제주 전주 등 3개 도시에서 시범실시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주요도시에 확대 실시될 예정이다.

교통개발연구원 ITS연구2팀 이상협(李相協·교통공학박사)팀장은 “ITS가 도입되면 도로에 설치된 감지기를 통해 신호등이 탄력적으로 조절되고 운전자에게 각종 교통정보를 제공하는 등 교통효율을 극대화시켜 물류비용을 10∼20%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울산·광주·창원〓정재락·정승호·강정훈기자>jr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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