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김소희/주검 없는 죽음은 더욱 슬프다

  • 입력 2004년 3월 21일 1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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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의 대통령 기자회견 직후 한강에 투신한 한 기업체 사장의 시신이 며칠째 발견되지 않고 있다.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익사나 비행기 추락사고 등으로 시신조차 찾을 수 없다면 더욱 슬픔에 빠지게 된다.

인간에 비할 바 아닌 짐승들에게조차 주검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강을 건너다가 악어의 습격으로 새끼를 잃어버린 어미 누는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며칠씩 새끼를 찾아 헤맨다. 새끼는 이미 악어 밥이 돼 버렸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새끼의 주검을 확인한 경우에는 매정하다 싶을 만큼 미련 없이 떠난다.

생태학자 앤디 베크는 뉴질랜드의 말 농장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새로 태어난 망아지가 죽을 경우 질병 예방 차원에서 가능한 한 신속하게 그 사체를 치우는데 그때 어미 말들은 극도의 비탄에 빠진 채 거칠게 울며 심한 몸부림을 쳐댔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밤중에 망아지가 죽었을 경우엔 사체를 치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데 어미 말들은 눈앞에서 망아지 사체를 치워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뒤 농장측은 망아지가 죽으면 의도적으로 어미 말이 죽은 새끼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고, 그러면 어미 말은 새끼의 주검이 사라져도 문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주검을 통해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쇼크 부정 분노 슬픔 그리고 수용이라는 심리적 변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주검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이 들며, 그 만큼 슬픔과 고통도 오래 지속된다고 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투신한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유가족들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도록 하루 빨리 시신이 발견되기 바란다.

김소희 동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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