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리는 오바마의 미국]<2>‘군사+외교’ 균형의 국제 리더십

  • 입력 2009년 1월 3일 02시 57분


하드 + 소프트 ‘통합파워’로 反美장막 걷어낼까

부시 ‘힘의 외교’ 이슬람권의 반감-불신 초래

오바마 ‘동맹회복 - 통합파워’ 외교방향 제시

“대결에서 대화로” 국제사회 신뢰회복 나설듯

“여기선 미군이라고 하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흔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만큼 미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요.”

지난해 12월 중순 이라크 북부 아르빌 시내. 이슬람 최대 행사인 하지(Haj·성지순례) 직후의 축제인 이드울아드하를 맞아 전통의상을 입은 쿠르드계 주민들이 춤을 추거나 가족단위로 텐트를 쳐놓고 음식을 즐기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사담 후세인 정권에 의해 수만 명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던 쿠르드인 거주 지역은 평화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철천지원수를 제거해준 ‘은인’ 미국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은 깊었다.

나르마 탈레 쿠르드 국영TV 정치부장은 “주민들은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의 공은 인정하면서도 군사력에만 의존한 미국의 정책은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에 대한 반감과 불신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한 이라크 기자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진 직후 세계 곳곳에서 ‘신발 투척지지 시위’가 벌어졌다. 점잖은 논조로 정평이 난 프랑스 신문 르몽드조차 ‘반(反)부시 신발, 인터넷에서 새로운 스타’ ‘수십만 명이 신발을 사러 대기 중’ ‘신발의 인티파다(봉기)’ 등 선정적인 제목을 신난 듯 쏟아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도 이처럼 처참하게 바닥으로 떨어진 미국의 이미지를 직시하면서 리더십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 경륜을 중시한 외교안보팀을 꾸리면서 ‘동맹회복과 통합파워’를 외교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오바마 당선인의 말을 인용하면 통합파워는 ‘군사력, 외교, 정보, 법 제도, 경제, 도덕적 전범(典範)으로서의 힘 등 미국이 가진 모든 힘을 통합하고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국 외교는 독단주의에서 다자주의로, 대결에서 대화로, 군사력을 앞세운 하드파워에서 가치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프트파워로의 전환을 큰 방향으로 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 보면 부시 행정부의 노선을 계승하는 대목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극적인 선회를 이룰 만한 여지가 많지 않은 게 외교안보의 엄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바마 당선인은 철저히 미국의 이익에 근거해 움직이는 중도실용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에게 닥칠 도전은 팔레스타인, 테러, 핵확산 등 당면한 난제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강력한 러시아의 부활’을 기치로 걸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해 말 “앞으로 3년간 전략미사일 70기를 증강하겠다”고 밝혔으며 러시아 국방부는 함정 14척, 탱크 300대, 전투기 50대를 우선 구매하기로 했다. 모스크바군사전략연구소 루슬란 푸호프 소장은 “러시아는 오바마 정부가 단극체제를 추구할 경우 무력으로 맞서겠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고 해석했다.

경제발전이 급선무인 중국은 지금 당장은 미국의 패권에 직접 도전하지는 않으면서도 시나브로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국의 미온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를 밀어붙이는 등 유럽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신뢰받는 미국의 리더십 회복’을 기치로 출항하는 오바마 외교함대 앞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이 선거 때 예고했듯 ‘중대한 시험’이 될 도전이 쉴 새 없이 닥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아르빌(이라크)=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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