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외신]<5>日 다케나카 금융상

  • 입력 2002년 12월 17일 18시 26분


9월 말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의 개각 때 금융계 재계는 물론 여당 자민당 내 주요 파벌들은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금융권을 감싸온 정치인 출신 야나기사와 하쿠오(柳澤伯夫) 전 금융상이 물러나고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부실채권 처리를 가속화하겠다는 교수 출신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사진) 경제재정상이 금융상을 겸직하게 됐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의 신문과 잡지들도 모두 “경제현실도 모르는 백면서생” “미국 헤지펀드의 앞잡이”라며 ‘다케나카 때리기’특집을 시작했다. 기존 경제시스템을 지키려는 개혁 반대세력에게는 다케나카 경제재정상의 금융상 겸직이란 ‘공포’ 그 자체였다.

다케나카 금융상은 취임직후 부실채권 처리를 둘러싼 ‘폭탄성 발언’을 거듭했다. “금융업계는 곧 도태가 시작되며 4대 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보호받지 못한다” 등등. 그 때마다 주식시장은 충격으로 출렁거렸다.

반대세력의 반격은 더욱 거셌다. 부실채권처리대책 중간 보고가 발표될 예정이었던 10월 22일 자민당 최대파벌의 실력자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전 관방장관이 다케나카 금융상을 불러 “대책 발표로 주가가 또 떨어지면 당신이 책임질거야”라며 심하게 질책했다.

다케나카금융상이 준비했던 안(案)에는 △은행 부실채권 정밀조사 △미국식 회계제도 도입 △부실은행 공적자금 투입 및 경영자 퇴진요구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런 정책을 실시하면 도산과 실업이 늘어나 경기가 더욱 악화된다는 게 아오키 전 장관의 질책이었다. 그 이면에는 다케나카 금융상이 주요 파벌 정치인들을 찾아다니며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는데 대한 분노가 짙게 깔려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장관이 정치를 몰라서야…”라며 사임을 촉구했다.

결국 다케나카 금융상도 그 후 1주일 동안 자민당 간부들과 금융권 수뇌부를 만나 ‘사전조정’을 한 후에야 대책을 발표할 수 있었다. 내용도 ‘금융권의 경영진 퇴진’ 등을 뺀 상당히 후퇴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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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부실채권이 일본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음은 모두 인정하는 사실. 그러면서도 금융개혁이냐, 경기부양이냐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일본에선 다케나카 금융상이 개혁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를 뜨겁게 응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다케나카 금융상은 와카야마의 나막신 가게 차남으로 태어나 히토쓰바시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일본개발은행과 대장성 재정금융연구소, 오사카대 경제학부 조교수를 거쳐 90년부터는 게이오대 종합정책학부 조교수로 일해 왔다. 1998년 오붙이 게이조(小淵惠三)내각 때 경제전략회의 멤버가 되면서 처음 정가에 선을 보였고 지난해 4월 고이즈미 총리에 의해 경제재정담당상에 기용됐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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