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2모작]문화유산 해설사 이상벽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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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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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할아버지’는 오늘도 宮으로 출근합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책 들고
한전시절 전국 ‘문화재 발품’
정년퇴직후 우연히 눈에 띈
‘문화유산 해설사 양성’ 전단
“바로 이거다” 교육과정 등록
숨은 사연 곁들인 맛깔난 설명
학생들도 어른들도 “하하 껄껄””

7일 서울 경복궁에서 이상벽 씨가 경남 사천시에서 수학여행 온 사천여중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복궁의 이모저모를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7일 서울 경복궁에서 이상벽 씨가 경남 사천시에서 수학여행 온 사천여중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복궁의 이모저모를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많은 사람이 정년퇴직 이후에도 활기찬 생활을 하려면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부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운전자금’이 필요한데 일정한 수입이 없으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은퇴 후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아가는 이도 적지 않다. 문화유산 해설사로 일하는 이상벽 씨(73·사진)는 적은 비용을 투자해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며 제2의 현역으로 살고 있다.》○ 문화유산과 남다른 인연


이 씨는 193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그는 10대 중반까지 살았던 부여에서 백제의 여러 문화유산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그가 어릴 때는 지금과 달리 문화유산에 ‘접근 제한’ 조치가 없다시피 했다. 그는 “고향이 부여라서 그런지 태어날 때부터 문화유산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문화유산과 맺었던 인연은 대학을 졸업한 뒤 되살아났다. 1961년 한국전력에 입사해 발령받은 첫 근무지가 충남 공주였기 때문이다. 공주는 부여와 마찬가지로 백제문화가 마치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 특히 그가 문화유산의 ‘소극적인 관찰자’에서 ‘적극적인 답사가’로 첫발을 내디디게 된 데는 당시 한전 공주지점장의 영향이 컸다. 공주지점장 본인이 즐겨 탐방을 다녔고 문화유산을 보는 안목도 높았던 것이다. 이 씨는 공주의 송산리 고분을 자주 찾은 기억이 약 5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그는 근무지가 바뀐 뒤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인근의 문화유산을 찾아 나섰다. 충남 당진군에 근무할 때는 안국사, 수덕사, 개심사, 추사 김정희 고택 등을 둘러보았다. 경남 마산시와 강원 춘천시 등에서 일할 때도 틈이 나면 근처의 문화유산을 탐방했다. 1993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이 나오자 이 책을 지도 삼아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답사하기 시작했다. 35년간 근무한 한전을 정년퇴직한 1996년 이후에도 한동안 문화유산 답사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3권에 나오는 문화유산의 85% 정도를 직접 찾아본 것 같다”고 말했다.

○ 문화유산 해설사로 새 출발


그는 정년퇴직 후 한전 협력업체의 일을 도와주던 2004년 어느 날 우연히 집으로 날아든 안내 전단에 눈길이 쏠렸다. 대한성공회 종로시니어클럽이 작성한 전단으로 ‘60세 이상 종로구 거주자로 문화유산 해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본업과 다름없는 열정으로 전국의 문화유산을 둘러본 지난날이 되살아난 것.

그는 종로시니어클럽 부설 문화유산 해설사 양성과정에 등록해 주 5회씩 16주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마쳤다. 수강료가 무료였던 이 과정만으로는 모자란다 싶어 자기 돈을 내고 서울시립대 부설 서울시민대학의 ‘서울의 궁궐과 조선문화’ 강좌와 국립민속박물관 전통문화 지도사 과정을 각각 수료했다. 그래도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기 위해 관련 서적도 구해 읽었다. ‘마음으로 읽는 궁궐’ ‘조선도 몰랐던 조선’ ‘조선왕조실록’ ‘이야기한국사’ ‘조선미술사’ ‘화인열전’ 등 그동안 읽은 책이 50권도 넘는다.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막상 문화유산 해설사로 나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경복궁에 무작정 나가 관람 나온 학생들을 붙잡고 설명을 시작했다.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주황색 외투를 직접 사다 입는 등 요령도 터득했다. 7년째에 접어든 지금은 종로시니어클럽의 연락을 받아 일주일에 사흘 정도 해설을 한다. 또 관람객들의 나이에 따라 관심을 보일 만한 소재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수준에 올랐다. 예를 들어 인왕산 치마바위를 소개하며 중종과 왕비 신씨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궁궐 터를 잡는 과정에서 격론을 벌인 일화를 들려주면 명당에 관심을 보이는 나이든 관람객들이 집중해서 듣는다고 한다.

그는 “가끔 해설을 하느라 하루 종일 걸어도 힘든 줄 모르겠다”며 “앞으로 학원이나 방송통신대에서 일본어를 정식으로 배워 일본인 관광객들에게도 한국의 문화유산을 설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강창희 소장의 한마디

이상벽 씨는 현역 시절의 취미활동을 정년 후의 자기실현을 위한 활동으로 연결했을 뿐 아니라 노후자금 마련에도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퇴직금을 오피스텔에 투자해 두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받는 월세로 생활비를 조달하고 해설을 하면서 약간의 수입도 얻는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대부분의 자금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전체 자산 중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나 된다.

부동산 시장의 전망으로 보나 자산 관리의 원칙으로 볼 때 부동산 비중은 일정 부분 줄이고 그 대신 금융자산의 비중을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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