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2모작] 국사 선생님 훈장님 되다 황산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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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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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중고교 국사 교사였던 이흥종 씨는 정년퇴직 뒤 어릴 때부터 배우고 싶었던 동양 고전 공부를 시작했고 ‘황산서원’을 세워 주변 사람들에게 배운 내용을 무료로 가르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훈구 기자
전직 중고교 국사 교사였던 이흥종 씨는 정년퇴직 뒤 어릴 때부터 배우고 싶었던 동양 고전 공부를 시작했고 ‘황산서원’을 세워 주변 사람들에게 배운 내용을 무료로 가르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훈구 기자

男兒須讀五車書 남아수독오거서 學而時習之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溫故而知新 온고이지신 可以爲師矣 가이위사의
36년 교편생활 마치자마자 성균관대 고전 공개강좌 등록
명심보감-논어-맹자-중용-주역
5년간 修學후 ‘황산서원’ 열어
초등생-시니어에게 무료 강의


경제적 능력이 어느 정도 충분하더라도 세심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직장을 떠난 이후의 생활은 무미건조해지기 쉽다.

언제든 게을러지려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하려는 굳은 의지와 결심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흥종 황산서원(黃山書院) 원장(75)은 끝없는 배움과 가르침을 목표로 삼아 은퇴 이후의 삶을 현역 교사 시절 못지않게 활동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 멈추지 않는 고전 공부

이 원장은 중고교 교사직에서 정년퇴직하던 해인 1999년 잠시도 쉬지 않고 곧바로 동양 고전 공부에 뛰어들었다. 당시 성균관대에서 무료로 진행하던 공개강좌에 등록해 고전을 벗 삼기 시작한 것. 전주사범을 나온 그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약학과를 가라는 부친의 뜻에 막혀 결국 사범대에 입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자문과 명심보감 같은 책을 읽으면서 고전을 향한 꿈을 키웠던 그로서는 미련이 컸다.

그는 국사 교사 생활 36년 동안 억눌러왔던 동양철학을 향한 열정을 성균관대에서 2년간 주역과 논어를 배우면서 해소해 나갔다. 이후 3년 동안 한국서당교육연수원에서 명심보감 고문진보 사략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시경 주역 등을 공부했다. 동시에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에서 맹자와 통감을, 고려대 사회교육원에서도 논어와 맹자를 파고들었다.

고려사를 주제로 사학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한자 급수시험에도 도전해 3급, 2급, 1급 자격증을 차례로 취득했다. 그는 “역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1급까지는 별도로 공부를 하지 않고도 합격했다”며 “하지만 사범 자격은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렀어도 일곱 번 만에야 통과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훈장 1급까지 땄고 현재 최고 등급인 훈장 특급반에 다니면서 춘추와 주역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동양 고전은 몇 차례씩 반복해서 배워야 그 진수를 알 수 있다”며 “배울 때마다 새로운 점을 깨닫고 해석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또 이 원장은 고교 때부터 틈틈이 써온 붓글씨 연습도 중단하지 않았다. 몇 차례 시화전에 초서 작품을 출품해 입상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붓글씨를 써주면 정말 좋아한다”며 “어떤 이들은 내 붓글씨를 표구해 집에 걸어두기도 한다”고 자랑했다.

○ 무료로 가르침 봉사


이 원장은 5년 정도 고전을 공부한 뒤 배운 내용을 가르치기로 했다. 2004년 황산서원이라는 ‘이동식 서당’을 차려 가르침을 베풀기 시작했다. 황산은 이 원장의 호(號)로 자신이 태어난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동에서 따왔다. 황산서원은 그가 거주하는 서울 성북구 정릉동 아파트단지 문화센터의 도서실에서 열리기도 하고 그의 자택에서 운영되기도 한다. 그가 다니는 산돌교회의 교인 집에서도 황산서원은 문을 연다.

매주 수요일에는 문화센터 도서실에서 60, 70대 회원들에게 사자소학을 가르친다. 목요일에는 초등학생들에게 한자급수시험 대비 교육을 하고 금요일에는 산돌교회 교인들에게 시경을 강의한다. 하지만 옛날 서당 훈장에게 바치던 강미(講米·수업료)는 받지 않는다.

그의 교수법은 독특하다. 한문을 처음 배우는 수강생들에게 천자문이 아니라 시경을 암송하게 한다. 천자문보다 시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암송하는 데는 천자문이나 시경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한자가 어렵지만 비둘기 구(鳩)는 아홉 구(九)와 새 조(鳥)를 합한 글자 식으로 알려준다는 것.

특히 그는 수강생이 모른다고 질문하면 바로 답을 주지 않는다. 수강생들이 옥편을 사도록 해서 찾아보게 한다. 옥편을 찾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그는 교사 시절부터 △공부에 취미를 갖도록 한다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공부는 자기 스스로 하게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한다는 교육방침을 지키고 있다.

이 원장은 고전을 쉽게 배울 수 있는 교재를 편찬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맹자만 해도 판본이 30종 넘기 때문에 고전별로 그 정수를 골라 책으로 엮겠다는 것. 또 붓글씨 교범도 펴낼 생각을 품고 있다. 70대 중반의 나이에 배우고 가르치며 책을 펴낼 생각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겨우 하고 있다”며 겸손해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강창희 소장의 한마디

이흥종 원장은 정년퇴직 후에 자기실현과 사회 환원적인 생활을 병행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삶이 가능한 것은 교원연금 수급자로서 최소한의 안정된 생활과 건강이 뒷받침되어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역 시절부터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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