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무한 도전’ 출발은 ‘무한 책임’의 리더십

  • Array
  • 입력 2011년 3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정경준 산업부 차장
정경준 산업부 차장
리 아이어코카는 경영학 사례연구에 종종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가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를 파멸 직전에 구해낸 위대한 최고경영자(CEO)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크라이슬러 CEO 재임(1978∼1992년) 하반기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진다. 이 기간 아이어코카는 자신을 ‘빛나는 CEO’로 부각시키는 데 온통 관심을 쏟았다. 투데이 쇼, 래리킹 라이브 등에 단골로 출연했고, TV 광고도 80여 편이나 찍었다.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미국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런 생활에 빠져든 탓일까. 크라이슬러의 기업가치가 곤두박질쳤지만 아이어코카는 CEO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직원들은 ‘Iacocca’가 ‘I Am Chairman of Chrysler Corporation Always(나는 항상 크라이슬러의 회장)’을 뜻한다고 비아냥댔다. 아이어코카는 은퇴 후 크라이슬러에 전용 제트기와 스톡옵션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쯤이면 노추(老醜)다.

창업 초기 또는 위기 상황에서 무보수 경영을 선언하는 CEO가 적지 않다. 원조는 맥도널드의 레이 크록이다. 그는 아이디어만 있었지 세계적 회사를 일굴 만큼 그릇이 크지 않았던 맥도널드 형제로부터 사업권을 인수했다. 야심 있고 유능한 인재를 뽑아 좋은 대우를 해줬지만 정작 크록 자신은 8년간 한 푼도 받지 않고 일했다. 말로만 청결을 외치는 대신 직접 점포를 돌며 화장실을 청소하기도 했다.

베스트셀러 ‘Good to Great(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인 짐 콜린스 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리더십의 정점인 ‘Level 5’ 리더의 특징으로 ‘창문과 거울’을 들었다. 일이 잘 돌아갈 때는 공을 돌릴 누군가를 찾기 위해 창문을 바라보고, 반대로 실적이 좋지 않아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할 때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본다는 것이다. 어느 곳이나 잘되는 조직은 직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책임과 희생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있는 CEO에게는 무한 책임과 희생이 뒤따른다.

불행하게도 현재 국내에선 이처럼 책임과 희생으로 존경을 받는 재계 리더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큰 허물이 없으면 리더의 반열에 오를 오너 일가에 대한 국민의 이미지도 그다지 좋지 않다. 여기엔 ‘회사의 밑바닥’을 모르고, 검증도 안 된 채 경영에 참여하는 재계 오너 자녀들에 대한 불신이 한몫한다. 게다가 이들은 실제 경영에 참여하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등기이사는 맡지 않아 왔다.

최근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긴 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맏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18일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에 선임됐다. LG전자도 같은 날 주총과 이사회를 열어 구본준 부회장을 사내이사와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에 앞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도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제 경영이 악화되면 구본준 부회장은 주주들의 거센 비난을 직접 받아야 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이부진 사장이 대표이사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등기이사 등재는 책임경영의 첫걸음일 뿐이다. 진정으로 책임지는 자세와 무한 희생으로 존경받는 리더가 될 수 있느냐는 지금부터다.

정경준 산업부 차장 news9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