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금융시장, ‘디테일’이 승부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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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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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초 휴대전화를 분실하고 신기종으로 교체하느라 전화번호를 바꿨다. 곧바로 거래하는 3개 은행의 인터넷뱅킹에 접속해 직접 연락처를 변경했다. 2개 은행은 즉시 개인정보를 수정해 중요한 문자메시지가 별 탈 없이 날아왔다. 문제는 나머지 한 곳이었다. 한 달여 뒤 이자가 연체되었다는 전화가 회사로 걸려왔다. 이 은행은 이자 납입일에 앞서 매달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줬는데 그때는 전혀 문자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경과를 알아보니 전산시스템에 여전히 옛 연락처가 기재되어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4개월이 지난 최근 인터넷뱅킹을 통해 확인한 결과 옛 전화번호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은행은 급기야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이브에 이틀 동안 전산망이 마비되는 대형 사고를 내고 말았다.

2011년 새해를 맞아 금융지주사 및 은행 보험 등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신년사를 통해 거창한 새해 계획을 쏟아냈다. 은행권만 봐도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IBK기업은행이 창립 50년 만에 처음으로 공채 출신이 행장으로 취임했다. 지난해 어윤대 회장 취임 이후 전열 정비를 마친 KB금융은 올해 대대적인 영업 대전에 나설 태세다. 새 틀이 짜이는 해인 만큼 신년사에 드러난 대로 CEO들의 포부가 큰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금융회사 CEO들은 숨겨진 ‘1%의 디테일(detail·작고 사소한 것)’을 꼼꼼히 살펴보길 권한다. 2005년 출간돼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중국 왕중추(汪中求)의 ‘디테일의 힘’은 어떻게 1%의 실수가 100%의 실패를 가져오는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270억 파운드가 넘는 자산을 보유한 233년 역사의 영국 베어링스은행이 젊은 청년의 손에 한순간에 무너진 것은 수익 확대의 큰 그림에만 매달려 ‘거래와 결산을 분리한다’는 기본적인 경영상식을 무시한 탓이었다. 개인 경험을 보더라도 정보 수정 요청을 방치할 정도로 사소한 전산관리의 허점이 대형 전산사고로까지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올해 금융대전에서 성과를 올려야 할 조급함 때문에 CEO들은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지도 모른다.

시장으로부터 들려오는 작은 반응과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함은 금융감독당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 칼에 얽힌 문제를 해결한다는 ‘쾌도난마(快刀亂麻)’식의 정책을 자주 구사해온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복귀로 이런 우려는 더 높아지고 있다. 그는 취임 직후 대형 금융지주회사들이 부실 저축은행을 떠 앉는 방향으로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큰 골격을 잡아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대형사의 동반 부실을 가져올 조치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이 관(官)의 힘이 컸던 시절에는 흘려보냈을지도 모를 이런 목소리에 더욱 귀를 여는 세심함이 이제는 필요하다. 시장이 대형화되고 밀접하게 얽혀 있는 현 금융시스템에서 1%의 작은 실수는 과거와는 파괴력이 다른 실패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나 금융감독당국이나 큰 목표와 대의에만 매달려서는 일을 그르치기 쉽다. 이들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시장과 고객들이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2011년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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