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아파트와 마치즈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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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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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산타클로스는 정신없이 바빴을 것이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하룻밤 안에 선물을 날라 주는 일은 분명 불가능한 과업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정재승 KAIST 교수가 산타클로스의 배송속도를 계산한 적이 있다. 선물을 받을 만한 지구촌 착한 어린이를 4억 명쯤으로 잡고 이를 가정 수로 환산하면 1억6000만 가구 정도. 지구가 도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면 하룻밤이라도 31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산타클로스는 1초에 1434가구를 들러야 한다는 셈법이었다. 집과 집 사이를 이동할 때 초속 1434km로 달려야 한다는 말이다. 음속의 4000배가 넘는다고 하니 바쁘다는 말로는 어림하기 어려운 빠르기다.

이런 산타클로스도 한국을 찾을 때는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는 아파트단지가 많아 이집 저집 들를 때의 시간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현재 한국의 주택 중 아파트 비율은 52.7%로 집 두 채 중 한 채가 아파트였다. 2년 뒤인 2007년에는 전국 아파트 수가 26만 채 더 늘었다. 여기에 주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오피스텔 등을 포함하면 규격화된 집에 사는 인구수는 부쩍 증가한다. 올해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나오면 최신 아파트 비율을 알게 될 것이다.

수치로 보여주지 않더라도 이제 아파트는 ‘국가 대표주택’의 지위에 올라섰다. 아파트 거주자 역시 평균 이상의 계층으로 한데 묶을 만하다. 한국이 아파트로 단일화, 평준화를 이룬 셈이다. 게다가 아파트 생활은 유목민과도 같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겠다는 생각에 ‘지금, 여기’는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다. 이웃, 정겨움, 공동체와 같은 요소는 기억 저편에서나 가물거릴 뿐이다.

하지만 ‘아파트 천하’가 영구 지속되리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어릴 적 생물시간에 배운 우점종(優占種)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어느 한 식물이 우위에 올라도 내내 승승장구할 수는 없다는 대목에서 본 용어였다. ‘아파트 생물학’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아파트가 극상 단계에 이르면 다른 단계로의 천이(遷移)는 불가피하지 않을까.

일본에는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우리말로 ‘마을 만들기’ 또는 ‘마을 가꾸기’에 해당하는 마치즈쿠리는 공해반대운동으로 시작해 지금은 인구감소 시대에 맞는 도시계획의 뜻까지 내포한다. 고밀도, 고층화를 따라가지 않고 마을을 주민들의 힘으로 좀 더 살기 좋게 만드는 자발적인 활동이다. 서울에도 서울시가 지원하는 ‘휴먼타운’ 시범사업이 성북동, 인수동, 암사동 3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우리 마을을 모두 헐고 아파트로 바꾸는 대신 우리 손으로 더 좋게 만든다는 연대 의지가 숨쉰다. 우리 삶의 터전에서 뿌리 뽑히지 않고 계속 살겠다는 의식도 큰 몫을 차지한다.

긴 시간을 들여 우리 마을을 조금씩 살기 좋게 가꾼다고 해도 값은 크게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웃이 함께 사는 마을의 무형적 가치는 고층 아파트단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각양각색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넘실거리는 조화와 나눔의 분위기를 어찌 돈으로 살 수 있겠는가.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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