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론스타가 남긴 ‘은행해서 돈 버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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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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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모 시중은행 행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날 일이 있었다. 이 은행이 리딩뱅크로 입지를 다져가던 시점이라 은행 경영과 관련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질문은 행장이 많이 하는 바람에 제대로 물어볼 틈을 잡지 못했다. 그가 기자에게 물어본 주제는 금융시장 쪽이 아니었다. 주로 정치권의 움직임이 그의 큰 관심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소 의아하긴 했지만 국내 굴지 은행의 최고경영자(CEO)인 만큼 다방면에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는 쪽으로 좋게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이 은행은 정치권의 외풍(外風)에 휩싸여 곤욕을 치렀다. 은행의 핵심 경영지표는 계속 떨어졌고 금융감독원 종합검사에서 각종 부실이 드러난 뒤 결국 행장은 물러났다.

하나금융지주 이사회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51.2%)을 전량 인수하기로 의결한 24일 외환은행의 한 간부를 만났다. 하나금융에 인수된다는 사실에 울분을 터뜨렸지만 ‘먹튀’ 논란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르곤 했던 대주주 론스타에 대해서는 의외로 우호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론스타는 악마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론스타는 꾸준한 경영실적으로 외환은행을 알짜배기 은행으로 바꿔 놓았다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론스타는 헤드헌터 업체를 통해 전문 경영인을 행장으로 영입한 것이 유일한 ‘경영 개입’이었다. 이후 외환은행의 근무행태는 크게 바뀌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이전에는 정부나 정치권 등 외부의 끈이 없으면 고위직 승진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적지 않은 간부들이 오후 5시만 지나면 외부 약속 때문에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이렇게 바깥으로 향했던 임직원의 관심과 시선을 외환은행 행장은 은행 내부로 돌려놓았다. 서구식 보상평가체계를 도입해 실적이 우수한 임직원에게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반면 대외 업무는 최소화했다. 정부, 감독당국, 정치권 등도 외국계 대주주가 들어선 탓인지 별 간섭을 하지 않아 외환은행은 공고한 성(城)을 쌓은 채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한국 은행권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가장 큰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IMF 여파로 시중은행의 주인으로 들어섰던 정부와 외국계 자본이 그 자리를 토종 민간자본에 물려주면서 4강 체제로 재편되는 기로에 서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 장면이 겹쳐 떠오르는 것은 시중은행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 금융시장이 후퇴하느냐, 아니면 진일보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은행 임직원들이 흔히 내뱉는 “외풍의 그늘에서 벗어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하소연은 핑계라는 생각이 점점 짙어진다. 그런 빌미와 토양을 제공한 것이 은행 스스로가 아니었느냐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다. 금융 감독 당국과 경제 부처, 정치권도 민간 토종자본으로 새롭게 재편되는 은행권에 밥숟가락을 놓을 생각만 해서는 이젠 곤란하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론스타가 남긴 게 뭐냐는 본사 기자의 질문에 “은행업이 경영에 열중하기만 해도 이익을 낼 수 있는 산업이라는 걸 보여줬다”고 답했다. 그 말의 의미를 새판 짜기에 나선 시중은행과 외부 관계자들이 새삼 곱씹어 볼 때이다.

박현진 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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