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韓美 창업부자 24명 vs 7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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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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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그룹 뉴스를 접하다 문득 각국의 부자 가운데 창업자와 상속자의 분포가 궁금해 웹 서핑을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자료를 찾을 수 없어 근사치로 한국과 미국의 100대 부자를 비교해봤다. 미국은 당대에 부를 성취한 창업부자가 71명이었다. 한국은 24명. 우연이라기엔 너무 뚜렷한 차이다. 미국은 포브스지, 한국은 재벌닷컴의 자료를 비교한 것이다.

미국의 100대 부자는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블룸버그통신 구글 델 아마존 나이키 애플 이베이 홈데포 랄프로렌 인텔 등 글로벌 기업의 창업자가 주류였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가 불과 26세의 나이에 36위에 오른 것도 눈에 뛴다. 조지 소로스 같은 금융회사 창업자가 제조업 창업자 못지않게 많은 점도 우리와 다르다.

한국의 특이한 점은 5대 그룹(삼성 현대 LG SK 롯데) 직계 및 방계 가족이 37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1위부터 11위까지를 보면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10위)를 제외하고 5대 그룹 패밀리가 10명이나 된다.

재산이 1조 원을 넘는 부자 19명 가운데 창업가는 4명에 불과하다.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김준일 락앤락 회장이 그들이다. 젊은이들이 멘터로 삼을 만한 사람들이다.

두 나라 부자를 살펴보다 보면 자본주의 역사가 훨씬 짧은 한국이 왜 창업형 부자가 적은지 의문이 든다. 우선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의 사례에서 보듯 미국은 벤처기업이 불과 10여 년 만에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생태계가 작동된다.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벤처기업가가 끊임없이 탄생하고 이들은 부와 고용을 창출해서 사회에 보답한다. 하지만 한국은 언제부터인지 창업으로 거대한 부를 이루기 너무 어려운 사회가 됐다.

두 번째는 부의 편법적인 세습이 쉬워 상속형 부자가 많기 때문이다. 국세청 검찰 법원 금융감독원 언론을 비롯한 사회의 감시견(watch dog)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무엇보다 기업의 1차 감시자인 사외이사들이 제 몫을 못하고 있다. 태광그룹과 C&그룹 사태를 들여다보면 사외이사들은 여전히 ‘거수기’에 불과하다.

특히 최근에 유행하는 편법적인 증여는 상속세 탈루보다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금융전문가들이 굴을 뚫어 회사의 재산을 빼돌린다는 의미로 ‘터널링(tunneling)’이라고 부르는 이 방식은 우선 기업 오너가 자식 이름으로 유망한 분야의 회사를 창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계열사를 동원해 이 회사의 성장을 돕고 훗날 이 회사를 상장하면 자식은 손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다.

터널링은 사실상 오너 경영자가 다른 주주들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더욱이 터널링은 유망한 창업분야를 오너 자식들이 힘들이지 않고 선점해서 사회적으로 창업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는다.

청년실업 대책으로 창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제대로 된 벤처 붐이 다시 인다면 우리 경제의 역동성은 살아날 것이다. 정부가 대기업이 벤처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컨트롤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렇게 된다면 10년 뒤에는 한국의 100대 부자 리스트도 많이 바뀔 것이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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