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경제 업그레이드]<2>사교육비 지출도 기업투자처럼

  • 입력 2005년 1월 2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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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하고 실력만 있다면 대학원이든 유학이든 다 보내주마.” 우리나라 부모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자식이 짜증을 내면 한 마디 더 한다. “공부 잘 하면 네가 좋지 내가 좋냐. 난 죽어도 너한테 손 안 벌린다.” 이 두 마디 말에 한국 가정경제와 부모 교육관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자녀의 학습능력과 취향을 살피지 않는 ‘밀어붙이기식 교육’, 가정 형편과 관계없이 너도 나도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한풀이 교육투자’, 자녀 교육에 전 재산을 털어 넣고 부모 자신의 노후 생활에 대비하지 않는 ‘맹목 투자’ 등이 그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사교육비=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교육비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사교육비가 과도한 것은 많은 한국 부모들이 공교육을 시원찮게 보기 때문이다. ‘좋은 학교 나오면 출세한다’는 학력 숭배도 사교육비 지출이 늘어나는 요인이다. 최소한 다른 집들만큼은 해주겠다는 심리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영향도 있다.

사교육비는 대표적인 ‘불변비용(不變費用)’ 항목이다. 아무리 살림이 어려워도 자식 교육만은 시키겠다는 부모가 적지 않다.

최갑수 송지영 씨 부부(오른쪽)는 두 딸의 사교육비로 월소득의 36%를 쓰고 있다. 가정 재무설계 전문가들은 사교육비를 월 소득의 20% 이하로 낮추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박영대 기자

경제 불황이 심해질수록 가계 소비지출 가운데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올해 1∼3분기(1∼9월) 도시근로자가구의 소비지출 중 교육비 비중은 12.1%로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7년 이후 가장 높았다.

도시 중산층은 더 심하다.

본보가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의 주부 수강생 84명에게 월 소득 대비 사교육비 비중을 물은 결과 38명(45%)이 ‘20% 이상’이라고 대답했다. 11명(13%)은 ‘40% 이상’이었다.

최근 방문한 두 가정도 이런 조사 결과와 비슷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부부=서울 여의도에 사는 최갑수(崔甲洙·39·금융회사 과장) 씨와 송지영(宋知英·35·주부) 씨 부부는 초등학생인 두 딸을 두고 있다.

월 평균 사교육비는 90만 원. 유일한 수입원인 최 씨의 월급 250만 원의 36%, 월간 가계지출 215만 원의 43%에 이른다. 적금과 보험 등 저축은 35만 원에 그쳤다.

‘사교육비 지출이 많지 않느냐’는 질문에 송 씨는 “우리보다 20% 이상 쓰는 집도 주위에 많다”며 “내년부터 작은 딸에게 수학과 미술 과외도 시키고 싶다”고 대답했다.

최 씨는 “두 딸을 대학은 물론 대학원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재무설계사인 파이낸피아 임계희(任癸熙) 대표는 최 씨 가정의 재무상황을 검토한 뒤 “사교육비 지출이 과다해 현재 저축으로는 한 자녀의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도 어렵다”고 진단했다.

임 대표는 “두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최소한의 노후자금을 마련하려면 사교육비를 50만 원 줄여 저축이나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중고교 재학 자녀가 있는 40대 회사원=건설회사에 다니는 배호필(裵虎必·47·경기 부천시 상동) 씨는 고교 3학년과 중학교 3학년인 두 딸의 사교육비로 매월 64만 원을 쓴다. 월수입 600만 원의 11%다.

배 씨는 “대학 학비는 당연히 책임지고 유학을 보내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재무설계사인 한국펀드평가 우재룡(禹在龍) 사장은 “배 씨 부부의 사교육비 지출은 적정한 수준이지만 월 소득과 저축 수준으로 볼 때 모두 5억 원이 드는 두 자녀 유학(4년 예상) 비용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교육비는 심리적 보험인가 투자인가?=LG경제연구원이 OECD 23개 회원국의 2003년 기준 교육투자 효율성 순위를 매긴 결과 한국은 최하위권인 20위로 나타났다.

한국의 ‘사교육 투자’가 부실 투자가 된 것은 효과를 따져보지 않고 남들 하니까 같이 하는 ‘부화뇌동(附和雷同) 교육투자’ 탓이 크다.

서울여대 교육심리학과 배호순(裵浩栒) 교수는 “나도 다른 집만큼은 과외를 시켰다는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한 사교육비 지출이 많다”며 “과외가 기대한 효과를 낳았는지 점검하는 절차를 거쳐야 부실 사교육 투자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배 씨의 부인 윤정숙(尹貞淑·44) 씨는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모 학원의 ‘족보강의’(시험문제를 짚어주는 강의)를 큰딸에게 수강하게 한 3개월 만에 그만두게 했지만 이후에도 성적은 차이가 없었다”며 “그 강의가 ‘월 35만 원씩 넣는 심리적 보험’에 불과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철용 기자 lcy@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자녀교육 설계 10계명▼

①자녀교육 설계는 신혼여행지에서 시작=몇 명의 자녀를 낳아 어떤 사람으로 키울지를 정한다. 이에 따라 자녀의 직업과 학력 등이 달라진다. 부모의 직업이나 향후 재테크 계획 등을 고려해 감당할 수 있는 교육비의 규모를 대략 결정한다.

말을 알아들을 때부터 가정형편을 터놓고 얘기하라=백만장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면 ‘돈을 모르는 티 없는 아이’로 키울 생각은 버려라. ‘아빠와 엄마는 1년에 얼마를 벌고, 그 가운데 넌 얼마를 쓴다’고 쉬운 말로 설명하라.

②말을 알아들을 때부터 가정형편을 터놓고 얘기하라=백만장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면 ‘돈을 모르는 티 없는 아이’로 키울 생각은 버려라. ‘아빠와 엄마는 1년에 얼마를 벌고, 그 가운데 넌 얼마를 쓴다’고 쉬운 말로 설명하라.

③고교 2학년 때 경제 자립 준비를 마치도록 도와라=고교생이 되면 세상 이치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 입시 준비에 바쁜 3학년 때는 피하고 1, 2학년 때 부모 노후설계의 필요성과 진행사항을 설명해준다. 조만간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교육은 의무가 아니라 투자=‘네가 원하면 대학원도 보내주고 유학도 보내주마’고 말하는 부모가 많다. 자녀가 ‘부모님이 전생에 나한테 빚을 많이 졌는가 보다’고 느낄 법도 하다. ‘친구가 학원가니까 나도 학원가고 싶다’고 떼쓰면 어떻게 할 것인가?

④교육은 의무가 아니라 투자=‘네가 원하면 대학원도 보내주고 유학도 보내주마’고 말하는 부모가 많다. 자녀가 ‘부모님이

전생에 나한테 빚을 많이 졌는가 보다’고 느낄 법도 하다. ‘친구가 학원가니까 나도 학원가고 싶다’고 떼쓰면 어떻게 할 것인가?

⑤자녀 교육설계와 노후설계는 동시에=자녀 교육자금과 부모 노후자금은 상충관계에 있다. 하나가 커지면 다른 하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자녀가 부모의 노후를 책임진다면 전 재산을 자녀에게 쏟는 것도 현명한 투자일 수 있다. 과연 현실은 그럴까?

사교육비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정하라=우선 1년 동안 자녀 교육에 투자할 전체 금액을 정한다. 이어 꼭 필요한 과외 항목을 고른다. 전체 한도를 먼저 정하지 않고 하나 둘 과목을 늘리다보면 사교육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다.

⑥사교육비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정하라=우선 1년 동안 자녀 교육에 투자할 전체 금액을 정한다. 이어 꼭 필요한 과외 항목을 고른다. 전체 한도를 먼저 정하지 않고 하나 둘 과목을 늘리다보면 사교육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다.

⑦가정경제 예산을 짤 때 자녀를 참여시켜라=전체 가계 예산을 세울 때도 자녀와 함께 논의한다. 부모가 문화생활비와 식비, 교통비 등을 어떻게 얼마나 줄일지를 심각하게 논의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녀도 은연중에 배운다.

결산을 꼭 하고 장부를 유지하라=자녀들에게 들어간 돈이 연간 가계지출의 20∼40%에 이른다는 점을 알면 자녀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이 만큼 돈을 들였는데 성적이 왜 그 모양이냐’ 식으로 몰아붙이지는 말라.

⑧결산을 꼭 하고 장부를 유지하라=자녀들에게 들어간 돈이 연간 가계지출의 20∼40%에 이른다는 점을 알면 자녀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이 만큼 돈을 들였는데 성적이 왜 그 모양이냐’ 식으로 몰아붙이지는 말라.

⑨주변에서 ‘정답’을 찾지 말고 가정에서 ‘해답’을 찾아라=‘다른 집들만큼은 해 주겠다’는 생각이 ‘묻지마 교육투자’의 출발점이다. 가정 형편이 다르고 자녀의 취향도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자녀의 미래는 부모와 자녀의 논의 속에서 만들어진다.

부모가 아닌 자녀에게 맞는 과외를 고르라=효과가 없는데도 과외를 시키는 부모가 적지 않다. ‘함께 과외를 한 다른 아이들은 성적이 올랐는데, 너만 제자리인 것은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마라. 중요한 건 내 자녀에겐 안 맞는다는 사실이다.

⑩부모가 아닌 자녀에게 맞는 과외를 고르라=효과가 없는데도 과외를 시키는 부모가 적지 않다. ‘함께 과외를 한 다른 아이들은 성적이 올랐는데, 너만 제자리인 것은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마라. 중요한 건 내 자녀에겐 안 맞는다는 사실이다.

두 가정의 자녀 교육 및 노후생활자금 마련 계획 점검
구분최갑수 씨(39·금융회사 과장)배호필 씨(47·건설회사 부장)
가족 구성부부와 딸 2명(초등학교 4, 2학년) 부부와 딸 2명(고등학교 3, 중학교 3학년)
자산-서울 여의도 아파트(시가 4억 원 상당)
-보험과 은행 저축 1100만 원
-경기 부천시 아파트(시가 4억 원 상당)
-투자용 오피스텔(시가 1억 원 상당)
월 평균 소득 및 지출소득250만 원600만 원(맞벌이 부인 월소득 150만원 포함)
지출215만 원420만 원
저축35만 원180만 원
월 평균 사교육비
지출 금액 및 항목
금액90만 원(소득의 36%, 지출의 42%)64만 원(소득의 11%, 지출의 15%)
항목*큰딸 56만5000원
-수학 미술 운동 글짓기 학원 31만 원
-영어 개인교습 20만 원
-수학 및 한자 학습지 5만5000원
*작은딸 33만5000원
-피아노 글짓기 개인교습 15만 원
-국어 수학 영어 한자 학습지 18만5000원
*큰딸 43만 원
-수학 과외 30만 원
-참고서 구입비 10만 원
-학습지 3만 원
*작은딸 21만 원
-수학 학원 16만 원
-참고서 구입비 5만 원
자녀 교육 및 노후자금 마련 계획
(부모 인터뷰)
-남들보다 사교육비 적게 쓰는 편. 내년부터 작은딸에게 수학과 미술 과외도 시킬 예정
-대학은 책임지고, 가급적 대학원에도 보낼 생각
-노후 대비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남들보다 사교육비를 적게 쓰는 편
-대학까지 책임지고 유학도 가급적 보내주겠다
-노후 대비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컨설팅결과컨설턴트파이낸피아 임계희 대표(공인 재무설계사)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공인 재무설계사)
문제점-사교육비 지출 과다
-대학교육 비용은 최소 1억∼1억3000만 원. 현재 소득 및 저축 상황을 감안할 때 한 아이 대학자금 마련도 어려운 실정
-지금 상태로는 노후생활자금 마련 어렵다
-사교육비 지출은 적정한 수준
-가장이 은퇴를 10여 년 앞두고 있으나 노후 설계가 없는 것은 문제
-두 자녀를 유학 보내려면 5억 원가량 필요. 이를 마련하려면 올해부터 매년 1억4000만 원을 저축해야 하나 현재 소득으로는 무리
권고-사교육비를 50만 원 줄이고 이 돈을 저축
-자녀들에게 가정 형편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고 이해를 구한다
-부인이 함께 일을 해 소득을 늘린다
-조금씩이라도 노후자금을 마련해 간다
-자녀 교육계획을 다시 짠다. 자녀 유학계획을 단기 연수 등으로 전환하는 것도 한 방법
-여유로운 노후를 위한 대책 마련 필요. 지금부터 매월 180만 원을 노후생활 자금 마련용으로 투자(주식 대 채권 투자 비율은 33 대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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