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고승철 칼럼]기업할 맛 나야 청년실업 준다

  • 입력 2004년 7월 20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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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도서관을 들여다보자. 방학 중인데도 학생들이 꽉 찼다. 저마다 뭔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상아탑에 면학 열기가 가득하니 한국의 미래는 얼마나 밝은가”고 감탄한다면 세상 흐름과 동떨어진 것이리라. 여러 대학생들이 머리를 파묻고 보는 책은 토익, 토플 등 영어학습서다. 기업에서 토익, 토플을 중시하기에 취업을 위해 이 점수를 올려야 한다.

토익, 토플은 영어 원어민에겐 초보 수준의 영어일 따름이다. 사고력과 상상력을 키워야 할 청년시절에 미국 중학생 수준의 영어 숙달에 젊음을 허송하고 있으니 “한국의 미래가 걱정스럽다”고 통탄해야 옳지 않으랴.

▼투자환경 불안… 인력채용 기피▼

취업 준비자는 사정이 절박하다. ‘이태백’ 선배의 실패사례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면접요령, 외모관리에도 신경을 쓰면서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치며 자기 최면을 걸어본다. 하지만 경제상황이 갈수록 어두워진다니 걱정이 태산이다. 한국경제가 우울증에 걸렸다 하지 않는가.

청년실업자가 38만여명에 이른다. 곧 학교를 졸업할 젊은이 가운데도 백수 대열에 합류할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고용전망을 보자. 취업정보업체 잡코리아가 최근 국내 300대 기업에 속하는 97개사를 대상으로 하반기 채용계획을 조사해보니 35개사만이 신입사원을 뽑을 것이라 한다. 이들 업체의 채용 예정인원은 9170명으로 작년 하반기 채용 인력 1만688명보다 줄었다.

“좀 참고 기다리면 사정이 나아지지 않겠나” 하고 애써 자위해도 그럴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LG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청년실업, 5년간 개선하기 어렵다’는 보고서는 제목만 봐도 기가 꺾인다. 이 보고서는 한국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은 떨어져 청년층 고용사정이 5년간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돌파구는 없는가. 우리 젊은이들이 나이 서른 언저리까지 부모 신세를 지는 ‘캥거루족’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문제가 어려울수록 해법은 가까이에 있다. 일자리를 만드는 주역인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최선책이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직원을 많이 채용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러려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적어야 한다. 경제는 예측 불가능성을 매우 싫어하는 속성을 지녔다.

현재 상황을 보자. 미래를 불확실하게 하는 요인들이 정치권, 노동운동권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지 않는가.

지도층이 절제되지 않은 말을 남용하면 불안감은 가중된다. 4부 요인이 모인 자리에서 “기득권자 가운데 대통령에게 악담하고 임기를 마칠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느니, “근본이 안 된 사람들이 집권했다”느니 하는 대화가 오간 자체가 경제의 안정성을 흔든다. 지도층을 보좌하는 386세대들은 어떤가. 정치에는 능하지만 경제는 모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들은 ‘이벤트’엔 강하지만 ‘매니지먼트’엔 약하지 않은가.

기업들에 ‘기업 할 맛’이 나는지 물어보라. 사업규모를 늘리고 젊은이들을 채용할 기분이 나는지도 질문해보라.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을 집합시킨 그런 공개석상에서는 말고….

▼집권층 기업 ‘장악’해선 안돼▼

기업인들은 흉금을 털어놓을 만한 대상에겐 “사업을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한다. 집권층이 진정 시장경제주의를 존중하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고 이야기한다. 혹 현실불만자로 찍힐까봐 대놓고는 말 못하지만….

청년들의 움츠러든 어깨를 펴주자. 그들은 한국의 미래다. 집권층은 민간기업을 ‘장악’하거나 ‘관리’하려 해서는 안 된다. 불안감을 줄여야 투자를 늘리지 윽박질러서 되는 일이 아니다. 말로만 시장경제를 존중한다고 하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 그게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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