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6>삼성-현대車-SK의 소유지배 구조 비교

  • 입력 2003년 8월 10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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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대기업집단이라면 삼성, LG, SK, 현대자동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한국 2위 그룹인 LG는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재벌식 지배구조체제를 벗어나고 있다.

나머지 대기업들은 어떤 상황일까?

기업지배구조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이사회 구성 등에 있어서는 최근 한국에서도 영미식 기준을 도입하고 있으며, 주주 이익을 강화하기 위해 증권집단소송제도 신설키로 했다.

▽재벌식 소유구조=그러나 상당수 대기업들은 창업주 일가가 평균 3∼5%의 지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마치 100% 지분을 가진 사적(私的) 기업인 것처럼 경영권을 지배하고 있다. 계열사끼리 순환출자 방식으로 주식을 교차보유해 우호지분을 높이는 것. 이 때문에 주주의 경영권 견제 및 외부감시가 어렵고 경영 투명성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 일가의 계열사 지분보유 현황을 공개하고, 총수 일가의 소유지분과 지배권의 차이를 나타내는 ‘재벌총수의 소유-지배 괴리도’를 도입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여기에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금지가 이뤄지면 총수의 계열사 지배가 더욱 제한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기업지배구조는 기업이 스스로 선택할 사항으로 정부가 개입할 성격이 못 된다”며 “이는 시장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어쨌거나 LG가 지주회사로 전환한 데 이어 SK그룹이 SK글로벌 사태를 계기로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하는 등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의 소유·지배구조=삼성은 아직도 총수를 중심으로 굳건한 수직계열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룹을 총괄 통제하는 구조조정본부 체제 역시 강고하다. 외환위기 이후 저수익 비주력 계열사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했지만 정보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계열사를 늘리면서 공정거래법 기준 64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계열사들은 수많은 순환출자를 통해 서로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지분구성도를 제대로 그리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 선진국의 경우 모기업이 자회사에 대해서는 절대 지분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삼성계열사들은 어느 회사가 모회사이고 어느 회사가 자회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순환출자가 많다.

학술진흥재단 지원으로 ‘재벌의 소유구조’를 연구하고 있는 인하대 김진방(金鎭邦) 교수는 “예를 들어 삼성전기의 외부주주에는 삼성전기 주식보유자뿐 아니라 삼성전기의 출자기업인 삼성전자의 주식보유자도 포함된다”며 “그러나 이들은 삼성전기의 경영에 대해 관심과 감시를 소홀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처럼 외부주주들은 ‘중층적으로 분산’됨으로써 외부에서 회사 경영을 감시하는 체계가 미흡해지는 반면 총수 1인의 지배력은 더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삼성은 총수를 중심으로 한 지배체제가 아직 견고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하기에는 총수일가의 지분이 부족해 당분간 지배구조 변화 움직임은 적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이학수(李鶴洙)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을 만나 지주회사 전환, 삼성전자 분리 등을 권유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을 일으켰다. 이 자리에서 이 본부장도 “삼성이 지주회사 요건을 갖추려면 15조원이나 필요하다”면서 “삼성은 절대 지주회사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창업자의 3대로 상속이 이뤄지고 계열사들이 더 성장하면 다음 세대에는 점차 소그룹별로 분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의 소유·지배구조=현대차그룹은 최근 1∼2년 동안 계열사간 순환출자가 급속히 늘었다. 2001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면서 미약했던 정몽구(鄭夢九) 회장의 우호 지분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정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는 현대모비스와 INI스틸이 현대차 주식을 사들임으로써 주력회사인 현대차에 대해 총수가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을 높인 것.

작년 말 현재 정 회장은 현대차에 대해 4.08%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현대 모비스, INI스틸 등의 현대차 지분을 합하면 내부지분은 20.86%에 이른다. 여기에 우리사주조합을 포함하면 25.31%. 정 회장은 4.08%의 지분을 가지고 25%가 넘는 의결권을 행사하는 셈이다.

김 교수는 “이는 전형적인 소유와 지배의 괴리 현상으로, 총수 개인 돈이 아닌 회사 돈으로 기업 지배권을 높였다는 의미에서 선진적인 지배구조 및 경영방식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에 대해 현대자동차는 물론 지분이 전혀 없는 기아차와 INI스틸이 금융지원을 함으로써 기업지배구조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SK의 소유구조=SK 역시 계열사간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를 갖고 있다. 주력계열사에 대한 최태원(崔泰源) 회장의 지분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총수 지분이 커 보일 정도.

이 때문에 SK C&C, 워커힐 등 비주력 계열사를 통해 SK㈜, SK텔레콤 등 주력 계열사에 대한 총수 지배권을 높이려고 주식맞교환을 하다가 편법 시비가 불거졌다. SK글로벌 분식회계도 이 과정에서 드러났다.

나아가 SK글로벌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채권단이 그룹 전체의 선단식 지원을 요구함으로써 재벌체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중적인 태도가 가감없이 표출되기도 했다.

SK는 사회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6월 18일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하고 계열사별로 이사회 중심 독립경영체제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별도의 그룹 조직 없이 SK 브랜드와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독립기업의 느슨한 연합체’로 변신하겠다는 것.

김 교수는 “최 회장 출감 후 최 회장과 손길승 회장 등을 중심으로 집단 합의 체제를 시도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소그룹으로 분리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유럽 경제구조 전공학자 주장 ▼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대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장점은 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주뿐 아니라 종업원, 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중시하는 유럽식 기업구조를 전공한 학자들이다.

이들은 “자본에도 국적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지나치게 주주를 중시하는 지배구조가 기업의 장기적 투자를 가로막고 성장엔진을 잠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천대 이찬근(李贊根) 교수는 “경제정의를 위한 개혁에 치중하다 성장엔진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재벌의 순기능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재벌이야말로 조직력, 마케팅력, 기술력에서 한국 최강의 인재 집단이자 문제해결 집단”이라면서 “재벌기업군을 지렛대로 전통 제조업을 세계 최강으로 키우는 데 주력하면서 정보기술(IT) 등 유망 첨단기술과 접목해가는 산업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핵심은 한국의 경제발전 단계를 어떻게 진단하고, 앞으로의 성장 전략을 어떻게 짤 것인가 하는 것. 미국은 이미 산업구조의 중심이 금융· 서비스업으로 옮아갔지만 한국은 임금이 많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과거 독일이나 일본처럼 지속적인 장비 투자를 통해 전통 제조업을 활성화함으로써 성장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기업들의 순환출자를 막고 재무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출자총액제한 제도나 부채비율 200% 등의 규제는 대폭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단기적 이윤논리가 횡행하는 자본시장에 대기업을 맡기기보다는 경영안정성이라는 대주주 체제의 순기능을 인정함으로써 지배권 혼란을 막고 경영의 장기적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대기업집단에 대한 주주 및 사회의 감시를 높이기 위해 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도 해외 기관투자가가 아니라 국민경제를 우선시하는 국민연금이나 은행 등이 공동지배주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 그는 “지금도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크게 높은 편”이라며 “한국 대표 기업들의 전략적 투자를 월가가 좌우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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