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아하!그렇군요]북핵문제 불거지면 왜 경제가 어렵나요

  • 입력 2003년 4월 29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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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 증권시장 주가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물어보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말은 농담이 아닌 진담이 되었습니다. 바로 북한 핵사태 때문이지요. 그만큼 북핵문제는 한반도의 안정을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로 등장했습니다. 당연히 경제도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지요. 북핵문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조목조목 짚어 봅니다.》

여러분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고개를 가로젓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바로 몇 해 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얼싸안고, 금강산 관광 길이 열리고, 이산가족 상봉이 여섯 번이나 이뤄지고,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 북한 응원단이 와서 히트를 쳤는데….

외국인의 생각은 다릅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가 북한과 미국의 전쟁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고 보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한국 사람 중에서도 전쟁을 우려하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이라크에서 힘을 과시한 뒤 더욱 의기양양해진 미국에 북한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배짱과 엄포로 맞붙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이 남한과 북한의 긴장에서 북한과 미국의 대결로 바뀐 모습입니다. 그래도 6·25전쟁의 쓰라린 경험을 알고 있고 이산가족들이 흘린 통한의 눈물을 지켜본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설마’ 하는 마음이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한국인과 외국인의 커다란 시각차에서 ‘북핵의 경제학’은 출발합니다.

한반도에서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벌일지 모른다는 판단이 서면 외국 기업들은 우선 한국에서 하는 사업을 줄이려고 할 것입니다. 사업 밑천은 외국인들이 대지만 한국에 공장을 짓고 한국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해 주로 한국에서 장사를 하는 외국 기업들이 많습니다. 만에 하나 전쟁이 나면 이들의 공장도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국 기업의 주식을 뭉텅이로 내다파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언제 공장이 파괴될지 모르는 기업의 주식을 갖고 있어 봤자 좋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북핵 문제가 점점 꼬여 간다면 외국인은 또한 한국 상품을 사지 않을 것입니다. 바다나 육지에서 군사적인 충돌이 생기면 주문한 물건이 제 때에 배달되지 못할 테니까요.

외국인의 몸조심은 전쟁이 터질 거라고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보다 많아야만 시작되는 건 아닙니다. 그들은 한국 사정을 한국인보다는 잘 모르기 때문에 잔뜩 긴장한 채 서로 눈치를 봐 가면서 양떼처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몇몇 외국인이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한국 주식을 팔기 시작하면 다른 외국인투자자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라, 많이들 파는데. 뭐가 있나? 가만 있자, 좀 있으면 다른 친구들도 팔겠지. 그러면 주가가 떨어질 것이고…. 에라 모르겠다. 나도 더 떨어지기 전에 팔아치우자.’

그 결과 주가는 정말로 많이 떨어집니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나라 돈과 외국 돈이 맞교환되는 외환(外換)시장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이 높아져 공장을 팔고 짐을 싸는 미국 사업가들이 갑자기 늘어나면 달러 값이 치솟기 시작합니다(원-달러 환율 급등). 달러 구하기 경쟁이 시작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달러에 1200원 했던 것이 1500원, 2000원으로 마구 뛰게 됩니다. 외국인들이 앞 다퉈 한국을 탈출하려고 하면 원-달러 환율은 점점 더 오르고, 환율이 급등하면 ‘아, 한국에 뭔가 진짜 탈이 생겼구나. 나도 빨리 뜨자’고 마음먹는 외국인이 늘어나 또다시 환율이 오르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마침내 한국 기업에 돈을 1년 이상 빌려 준 외국은행들까지 빚 독촉에 나서면서 가져오는 환율 급등은 우리 경제에 치명상을 안겨 줍니다. 3년 전 1달러가 1200원 할 때 한국 기업이 외국 은행에서 만기 3년으로 1억달러를 빌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환율이 그대로라면 1억달러×1200원=1200억원(이자는 없다고 가정)을 은행에 들고 가 달러로 바꾼 뒤 외국 은행 계좌에 보내면 됩니다. 환율이 달러당 1500원으로 높아지면 빚을 갚는 데 1억달러×1500원=1500억원이 들어갑니다.앉은 자리에서 300억원 손해를 보는 셈이죠.

외국 빚쟁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우리나라 은행에 쌓여 있는 달러가 바닥이 날 수도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이렇게 터졌습니다.

외국인들이 ‘굿바이 코리아’를 선언하면 한국 기업도 시련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국계 기업이 문을 닫으면 그 밑에서 부품 원자재 등을 대 주면서 먹고살던 한국 기업의 돈 벌이가 나빠집니다. 외국인이 우르르 주식을 쏟아내 주가가 많이 떨어지면 새로 만든 주식을 팔아서 사업자금을 마련하는 데 차질이 생깁니다. 외국 빚쟁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빚 갚을 돈을 준비해 둬야 하기 때문에 공장을 짓거나 직원을 늘리는 투자를 미룰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북핵 문제는 경기불황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외환시장이란? ▼

한국 돈인 원으로 미국 돈인 달러나 일본 돈인 엔을 사거나, 달러를 유럽 통화인 유로로 바꿀 수 있는 곳. 외환시장은 외환거래가 은행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좁은 의미와 은행 및 고객 사이에서 일어나는 넓은 의미의 시장으로 나누어진다. 서울 외환시장에선 하루에 약 25억∼30억달러의 외환거래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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