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임규진/휴대전화와 쌀

  • 입력 2004년 2월 15일 1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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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여러분 기뻐하십시오. 휴대전화를 쌀로 바꾸는 ‘특수 뻥튀기 기계’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이 기계는 휴대전화 1대를 쌀 10가마로 만들어 줍니다.”

㈜한국핸드폰변형의 김미곡 박사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역사적인 신기술을 발표했다.

전 세계 언론은 서울대 황우석 박사팀의 ‘인간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이은 한국과학기술의 승리라고 극찬했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언론에 의한 보도약속시간 위반(엠바고 파기)도 없어서 김 박사의 업적은 더욱 빛이 났다.

국내 쌀값은 가마당 16만원이고 휴대전화는 대당 40만원. 휴대전화를 쌀로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10만원이므로 휴대전화 1대로 11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 셈이다.

김 박사는 쌀 농가를 생각해서 원가 5만원인 휴대전화 쌀 한가마를 10만원에 팔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년 뒤 김 박사는 사기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그는 휴대전화를 미국에 몰래 수출한 뒤 그 돈으로 미국 쌀을 가마당 5만원 대에 수입해왔던 것. 그의 신기술은 화학이 아니라 경제학이었던 것이다. 사기극이 통했던 1년간 일부 생산자는 쌀농사를 포기했지만 모든 소비자들은 전보다 훨씬 싼 값으로 쌀을 살 수 있었다. 김 박사 케이스는 물론 가상 시나리오다.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비슷한 우화를 통해서 자유무역의 이익을 강조했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중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19세기 초 영국에서 벌어진 리카도와 맬서스간 곡물논쟁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간의 경제사를 보면 세계경제는 자유무역에 손을 들어준 것 같다. 최근까지 세계 각국은 이런 저런 협정을 통해 무역장벽을 제거해 왔으며 경제학계도 자유무역론자가 다수를 이뤄 왔기 때문이다.

김 박사의 휴대전화 쌀에 다시 눈을 돌려보자. 김 박사의 밀수 행각이 적발되지 않고 계속됐다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됐을까.

우선 쌀 생산원가가 10만원을 넘는 농가들은 전업해야 했다. 일부는 새로운 작물로 바꾸고 일부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생산원가가 10만원 미만인 농가들은 시간을 갖고 생산원가를 낮추고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 노력했다. 결국 쌀 생산원가를 국제수준인 5만원 대까지 낮추고 품질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자유무역이 더욱 확산되면서 정부는 결국 쌀 시장을 완전히 개방했다. 시장에선 미국산 쌀이 물밀듯 들어왔지만 국산 쌀은 끄떡없었다. 품질과 가격 면에서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뻥튀기기계와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그의 사기행각 기간에 소비자들은 자유무역의 이익을 누렸고 한국 농업은 국제경쟁력을 확보했다.

김 박사는 상을 받아야 하나, 벌을 받아야 하나.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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