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밀착취재]유종환 밀리오레 사장

  • 입력 2001년 11월 5일 18시 51분


창문 너머로 단풍 든 남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 곳은 서울 명동 밀리오레 17층 사장실. 유종환 사장(柳宗煥·사진)은 “이 터가 기(氣)가 억센 땅이랍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 곳을 거쳐간 기업이 다들 어려움에 처했죠. 저도 건물을 사자마자 외환위기가 왔구요.”

‘기’(氣)는 땅보다 유 사장이 더 센 모양이다. 유사장은 원래 의류 도매상가를 열 작정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때 고객인 소매상이 영업을 못하니 도매시장은 곧 부도나는 길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도매상이 직접 소비자에게 옷을 파는 상가를 생각했어요. 도매상인은 2,3일만에 새 디자인을 낼 수 있고 건물당 수천 개 점포가 있으니 소비자는 수만 개 제품군을 한자리에서 도매가격에 볼 수 있잖아요.”

98년 8월 서울 동대문을 시작으로 명동과 경기 수원, 광주, 대구, 부산에 밀리오레가 들어섰다. ‘패션몰’이라는 독특한 모델로 그는 올해 9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주최 ‘벤처2001 간사이포럼’에서 아시아벤처인(人)으로 뽑혔다.

내년에는 일본 후쿠오카의 대형 종합레저단지에 4000여평 매장도 생긴다. 물론 ‘밀리오레’ 브랜드명으로 들어간다. 일본에서는 ‘코카콜라’ 만큼이나 ‘밀리오레’가 유명하다는 것.

“93년에 이탈리아의 한 옷 디자이너에게 ‘밀리오레’ 브랜드의 옷디자인 판권을 샀어요. 2억5000만원이에요. 한국에서 팔았는데 한국원단이나 봉제가 디자인을 못 따라가 ‘밀리오레 옷’은 금방 접었어요.”

동대문시장에서 30년을 지낸 ‘옷 장사꾼’ 유사장은 점심시간마다 운전기사가 따뜻한 도시락을 학교에 가져왔을 정도의 춘천 갑부집 도련님이었다.

“고3때 부도로 ‘알거지’가 돼 온가족이 서울로 야반도주했어요. 한 6개월 술만 마시고 정신못차렸죠. 가진 건 몸뚱아리뿐이라는 걸 겨우 인정하고 나니 뭐라도 해볼 마음이 들더군요.”

74년 여기저기서 얻은 돈으로 ‘성창 니트’라는 스웨터 공장을 차렸다.

“10여년을 엎었다 망했다 하고서야 시장보는 눈이 생기더군요. 82년에 마지막으로 망하고 그 다음부터는 일이 좀 풀리네요.”

그는 일반 원사를 사다 쓰지 않고 성창제품에만 쓰이는 전문소재를 개발했다. 앙고라 스웨터에 ‘날염’하는 기술도 그의 아이디어. 이 앙고라스웨터는 하루에 1억원어치가 팔리기도 했다.

“밀리오레 이후 각지에 패션몰이 난립했죠. 거의 부도났거나 제대로 영업이 되질 않아요. 상당한 상가관리운영비를 감당할 자금여력들이 없고 집단의류상가를 운영하는 노하우도 부족하기 때문이죠.”

유사장은 30년간 ‘옷 판 돈’과 동대문 밀리오레를 분양해 받은 돈으로 ‘밝힐 수 없는’ 액수의 자금을 가지고 있다. 은행 대출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내년중으로 밀리오레 전용 원단·소재를 개발해 상인들에게 공급하려고 합니다. 디자인은 소재만 좋으면 무궁무진 개발할 수 있어요. 상인들의 경쟁력의 핵심이 원단인 셈이죠.”

엄격한 상가운영정책을 못마땅해하는 일부 상인들, 짧은 시간에 돈을 많이 번 사람에 대한 묘한 시선 등으로 유사장은 조직폭력배 운운하는 소문과 각종 투서, 고소고발에 시달리기도 했다.

“상인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도저히 건물운영자 혼자 성장할 수 없어요. 혈연 지연 학연은 아무것도 없지만 30년 소중한 시장인생을 쌓았죠. 제 일이 재래시장의 마지막 활로가 됐으면 합니다.”

▼유종환 사장은▼

△55년 강원 양구 출생

△74년 춘천고 졸업

△74년 성창니트 설립

△96년 성창F&D 대표이사

△96년 의류도매상가 ‘팀204’ 개점

△98년 동대문 밀리오레 개점

△99년 ㈜밀리오레 대표이사

△2000년 명동 밀리오레 개점

△2001년 수원 대구 광주 밀리오레 개점

<김승진기자>sarafi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