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세로 가는 길]탈세 조장 「세무환경」

  • 입력 1999년 7월 1일 19시 25분


『현행 세율이나 세제 자체가 불성실 신고를 전제로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만약 모든 납세자가 성실신고를 한다면 현행 세율은 절반 이하로 내려야 할 것입니다.』

“정말이지 우리도 제대로 세금내고 정직하게 영업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각종 여건이 탈세를 부추기고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동아일보가 ‘공정과세로 가는 길’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쏟아진 자영업자들의 항변이다.

이들은 대부분 탈세사실을 시인하면서도 “탈세를 묵인 또는 조장하거나 탈세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법규정과 세무환경이 더 큰 문제 아니냐”며 불만을 털어 놓았다.

서울 중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K씨는 1월 부가세 신고때 △월평균 매출액 260만원 △임대료와 재료값 등 경비 240만원 △소득 20만원 등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이는 K씨의 실제 영업실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제 영업실적은 월평균 매출액 600만원에 지출이 △월 임대료 350만원 △재료값 60만원 △직원월급(4명) 190만원이었다.

매출액 600만원에 경비가 600만원 들었으니 영업이득은 전혀 나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K씨는 왜 굳이 매출액을 줄여 신고한 뒤 영업이득도 20만원이 났다고 신고했을까.

K씨는 현행 신고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소득세법에 따르면 자영자가 종업원의 급여를 비용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급여지급시 갑근세를 원천징수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자영자가 종업원의 급여를 비용으로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특히 가족형 자영자의 경우 가족구성원을 종업원으로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따라서 매출을 축소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불만은 또 있다. IMF 체제하의 경제난으로 겨우 적자를 면하고 있지만 20여만원의 이익이 났다고 신고하지 않을 수 없는 세무환경이다.

만약 전혀 이익이 남지 않았다고 신고했다가는 세무당국으로부터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자를 봤더라도 흑자가 났다고 신고할 수밖에 없다는 게 K씨의 하소연이다.

최근 500여만원을 들여 식당을 개보수한 서울 강서구의 Y씨(42)는 ‘직장인은 성실과세, 지영자는 탈세’라는 세간의 인식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Y씨는 “직장인이야 재투자비용이 따로 없지만 자영자들은 소득에서 재투자비용을 마련해야 한다”며 “우리만 탓할 게 아니라 재투자비용에 대한 세제혜택이나, 하다못해 대출이자에 대한 세제혜택만 있으면 탈세는 현재보다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걸면 걸리는 걸리버식’ 세무조사에 대한 불만도 많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50)의 지난해 신고매출액은 1억5000만원. 18평짜리 구멍가게형 한의원에서 연간 매출액을 1억5000만원으로 신고한 것은 ‘대단한’ 성실신고다.

그러나 만약 세무조사가 나온다면 김씨도 걸리지 않을 수 없다. 세무조사가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느냐’는 식으로 이뤄지는 데다 ‘성실과세자’인 김씨도 매출액 신고 당시 실제보다 20% 가량은 줄여서 신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교적 성실하게 신고하는 자영자들도 세무당국이 ‘칼’만 휘두르면 언제든지 ‘범법자’라는 굴레를 쓸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평소 세무직원과 안면을 트기 위한 비용도 만만찮다는 게 자영자들의 또다른 불만이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K씨와 식당을 운영하는 Y씨 역시 이 점을 지적했다. 이들에 따르면 ‘떡값’은 IMF체제로 접어든 이후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명절이나 휴가철 등 때마다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들은 “떡값은 탈세사실을 눈감아주는 보험료”라며 “그러나 세무서외에 경찰과 소방서, 구청 등에도 정기적으로 떡값이나 선물을 돌리기 때문에 비용이 꽤 들어간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런 현상은 탈세는 자영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무서 직원들의 부패에도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의류소매상을 하고 있는 A씨의 경험담. 무자료거래한 사실이 드러나 세무조사를 받게 된 A씨는 2000만원이라는 거액의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한다는 세무서 직원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일은 쉽게 풀렸다. 세무서 직원에게 250만원을 건네자 추징세액이 800만원으로 줄어든 것. 결국 세무서 직원이 자영자의 탈세를 조장한 셈이다.

A씨는 “자영자들의 탈세를 비난하기에 앞서 성실신고를 위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세무당국의 노력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상훈·선대인·박윤철기자〉corekim@donga.com

◇동아일보―참여연대 공동취재팀

▽동아일보〓정동우차장 정성희복지팀장 하종대사건기획팀장 정용관 홍성철 김상훈 권재현 선대인(이상 사회부) 신치영기자(경제부)

▽참여연대〓김기식정책실장 윤종훈전문가팀장(회계사) 하승수 박용대변호사 최영태 이재호회계사등 관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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