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盧정부, 어떤 일 한걸로 남겠나

  • 입력 2004년 8월 9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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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역사에 어떤 일을 한 것으로 남겠느냐?”

지난주 이해찬 국무총리가 민간 경제전문가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권영준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이 던진 이 질문이야말로 현 정권의 존재 이유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다. 이는 곧 현 정권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인지에 대한 강력한 회의(懷疑)이며, 그 같은 불확실성을 걷어내지 못하는 한 오늘의 경제 위기 또한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현실 진단이기도 하다.

경제위기론이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대통령의 우려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모든 경제지표가 빨간 불을 켜고 있는데도 위기가 아니라고 한대서야 위기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그렇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경제 위기의 경제외적 요인▼

그렇다면 경제 위기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해법 찾기에는 경제주체들의 동참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부는 현재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할 여력이 있는 사람이 다 (집권측이 보기에) 기득권 세력이고 청산대상임을 명심해야 한다”(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는 지적이 틀리지 않다면 현 정권은 별로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까지 “부자가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가는데 사회분위기는 부자들이 돈을 쓰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고 거들고 있으니 그렇지 않다고 하기도 어렵게 됐다. 결국 오늘의 경제 위기에는 경제적 요인보다 경제외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 않느냐는 얘기다.

경제외적 요인의 핵심은 정권의 국정철학이겠는데, 현 정권은 경제의 엔진을 어떻게 지속 가동시켜 성장잠재력을 확충해 나갈 것인가보다는 한국의 주류사회를 어떻게 바꿔내느냐는 데 관심을 쏟고 있는 듯싶다. 정권 출범 이후 집요하게 계속되는 편 가르기와 과거사 청산에 대한 집착을 보면 현 정권이 역사에 어떤 일을 한 것으로 기록되고 싶어 하는지 미뤄 짐작할 만하다.

물론 과거사 청산도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로서 정리해야지 그것을 정권의 헤게모니 장악 수단으로 쓰려 해서는 무덤 속에 누워 있던 이들까지 일어서 반발할 것이다. 더구나 과거사 청산의 명분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실용주의적 위정자라면 그 일이 과연 국정의 우선순위인지 숙고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다는 과거사 청산이 오히려 미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닐지 염려해야 한다. 한 손으로는 경제를 살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과거사를 청산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은 되는지, 그럴 만한 정권의 능력이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하기야 새삼스레 물을 것도 없이 집권측은 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경제 위기를 내세워 반(反)개혁을 획책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그럴 생각이라면 보다 솔직해져야 한다. ‘비록 경제가 더 어려워지더라도 한국의 주류세력을 바꾸기 위한 우리의 역사적 소명(召命)을 게을리 할 수 없다’고.

▼성장엔진마저 꺼뜨려서야▼

이 모든 것이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현 정권을 탄생시킨 시대의 변화 요구는 결코 나라를 온통 분열로 몰아가라는 것이 아니다. 개혁은 미래로 향한 선순환(善循環)이어야지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고 배제하는 악순환이 돼서는 안 된다. 일제 식민지에서 광복, 분단과 전쟁, 군부독재와 산업화, 시민항쟁과 민주화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이것이 역사의 흐름이다. 그 역사의 흐름이 노 정권에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법치(法治)로 나라의 원칙을 세우며, 시장경제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그를 통해 평화통일의 기반을 마련해나가라는 것이다.

이 같은 큰 틀이라면 주류, 비주류의 교체가 그렇듯 중요하고 시급한가. 그렇게 나눠서 역사의 진정한 소명을 이뤄낼 수 있겠는가. 한풀이식 과거사 청산에 매달려 경제의 성장엔진마저 꺼뜨린다면 그것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길인가. 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현 정부가 역사에 어떤 일을 한 것으로 남겠느냐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전진우 논설위원실장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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