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열차폭발]전체 희생자 절반이 소학교 어린이

  • 입력 2004년 4월 25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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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변한 땅에 두 개의 커다란 구덩이가 나 있었다. 마치 운석이 충돌한 듯했고, 조사단이 도착했을 때 이곳엔 섬뜩한 적막감만 감돌았다.”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발생 이틀 뒤인 24일 현장을 찾은 국제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사고 후의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조사단이 현장에서 목격한 참상은 중국 국경도시인 단둥(丹東)에서 간접적으로 전해 듣던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제조사단의 현장 조사와 중국 신화통신 등 극히 제한된 일부 외신의 현장 취재가 진행되면서 폭발사고의 참상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특히 용천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이 전체 사망자 가운데 절반이나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사회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떼죽음당한 용천소학교 어린이=신화통신 기자는 “용천소학교 건물은 직격탄을 맞은 것처럼 파괴돼 있었다”고 전했다.

“24일 소학교를 찾았을 때 살아남은 학생들이 교문 앞에 기대 서서 사고 순간을 회상하며 부서진 학교 건물을 망연자실하여 바라보고 있었다. 운동장에는 운동기구와 전깃줄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역 동쪽 200m 지점에 있는 이 학교는 지붕이 날아가고 유리창이 모두 깨졌으며 꼭대기층인 3층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사고가 난 시간은 학생들이 하교를 준비하던 무렵. 많은 어린이들이 사고 순간 매몰돼 즉사했고, 매몰을 모면한 어린이들도 총알같이 날아온 파편에 맞아 숨졌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현장을 목격한 화교(북한 거주 중국인)를 만났다는 단둥 소식통은 “사고 당시 학교에 1500명이 넘는 학생이 있었다”면서 “매몰자 수색이 끝나면 어린이 사망자 규모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폐허로 변한 역 주변=열차가 폭발한 지점에는 깊이 10m가량의 구덩이 두 개가 생겼다. 국제적십자사 관계자는 “4km 떨어진 곳에서도 구덩이가 보였다”고 전했다. 선로는 곳곳에서 휘어졌고 뒤집어진 객차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역 주변 수백m 반경의 주택가는 폐허로 변했다. 흔적도 없이 파괴돼 돌무더기 상태로 남아 있는 집이 많았고 벽만 남았거나 지붕이 날아간 집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사고지점에서 4km 떨어진 곳의 집들도 지붕이 날아가거나 창문이 부서졌다.

주민들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신화통신 기자들은 “골목길을 지날 때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주민들과 마주쳤다”고 전했다. 일부는 파괴된 집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부서진 공장 앞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상당수 주민은 사고 현장을 치우며 쓸 만한 물건을 찾고 있었다. 국제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사람들이 우마차에 가재도구를 싣고 친구집이나 친척집으로 가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의 1차 구호조치는 신속하게 진행된 것처럼 보였다. 구호단원들은 “우리가 도착했을 때 시신이나 부상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면서 “북한 정부가 현장을 일차적으로 잘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핵폭탄이 터진 줄 알았다”=현지 주민들은 조사단 관계자들에게 “사고 당시 역 일대가 불바다로 변했고, 차량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울부짖는 사람들로 아비규환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한 북한 여성은 국제적십자사 직원에게 “미국이 드디어 핵폭탄을 터뜨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들 역시 “드디어 전쟁이 났다. 이제 끝장났다고 여겼다”고 증언했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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