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98정국/경제개혁 기상도]경제난 극복 첩첩산중

  • 입력 1998년 1월 4일 20시 30분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올해를 ‘6.25 이후의 최대 시련기’로 규정했다. “물가는 뛰고 실업은 늘어나며 불경기 속에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할 것”이라는 암담한 전망이었다. 현정부나 민간경제연구기관들의 예상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어둡고 참담하다. 지난해 이미 6.6% 오른 소비자물가는 올해 8%대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한다. 작년까지 합쳐 수입이 14% 이상 늘지않으면 실질 소득은 전보다 더 떨어진다는 계산이다. 기업은 하루 평균 1백개 이상이 쓰러진다. 이미 지난해 11, 12월 두달 동안 실제로 있었던 통계다. 이 과정에서 실업자는 하루에 4천명꼴로 생겼다. 그나마 이 정도는 약과다. 부실 금융기관과 부실 재벌기업에 대한 정리가 본격화하면 문 닫는 회사가 줄줄이 생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11월말까지 57만명이었던 실업자는 1백50만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4인 가족으로 환산하면 1백명중 13명이 ‘실업자 가족’이 된다는 결론이다. 문제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이다. 김차기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공정한 고통분담을 통한 국난 극복’을 제시했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가 먼저 고통분담에 앞장서고 다음에 기업도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공정한 고통분담이 될 때 모든 국민이 자진해서 국난극복에 나설 것으로 확신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확신’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정부 부처에서부터 삐걱거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현정부에서도 출범 초기부터 정부조직 개편을 구상해 94년말에 전격 단행했지만 결국은 실패작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뿌리 깊은 관료조직의 저항에 부닥쳐 조직을 축소하기 보다는 ‘이쪽을 떼어내 저쪽에 붙이는 식’의 미봉책에 그쳤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말처럼 쉽지않다는 증거다. 기업의 동참도 낙관하기는 어렵다. 말이 ‘구조조정’이지 그것을 실천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재무구조 조정만 해도 그렇다. 30대 재벌그룹의 경우 평균 부채비율은 387%(96년 기준)에 이른다. 이중 부채비율이 500%를 넘는 재벌그룹도 10개사(이중 5개사는 작년에 도산)에 이른다. 이를 단기간에 선진 외국수준인 100%대로 낮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됐다고 해서 곧바로 ‘국제 경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기술과 지식이 축적돼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짧은 시간내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고통분담의 실질적 주체인 근로자 계층의 동참 여부에 있다. 노동계의 양대 산맥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지난해말 김차기대통령과의 면담에서 한결같이 ‘정리해고 불가’입장을 고수했다. 조만간 구성될 ‘노사정(勞使政)협의체’에서도 이런 뜻을 쉽게 굽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노동계 입장에서 보면 ‘고통분담’에 참여하려 해도 그럴만한 사회적 토대가 형성돼 있지않다. 고용보험이 유명무실하고 직업안정기금은 여전히 구두선에 머물러 일자리를 잃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생계지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새정부 진영은 고용보험을 5조원 상당으로 확충한다고 여러차례 공언했지만 재정경제원은 당장 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보고에서 “재정형편상 문제가 많다”며 제동을 걸고 나선 상황이다. 여기에 선거기간중 약속했던 수많은 공약의 ‘거품빼기’도 불가피해 이로인한 반감도 적지않을 전망이다. ‘정리해고 2년 유보’는 이미 물건너 갔다고 해도 ‘2000년대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농어가 부채 경감’ ‘그린벨트지역 해제 및 보상’ ‘교육재정 국민총생산(GNP) 6% 확충’ 등 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수정이 불가피한 공약(空約)으로 돼 버린 예가 한 둘이 아닌 실정이다. 결국 김차기대통령이 표방한 ‘고통분담을 통한 국난극복’은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럴 경우 김차기대통령이 취할 방안은 극히 제한된다. IMF와의 합의로 외길 선택만 남겨놓고 있는 그로서는 과거 정부가 그랬듯이 일련의 ‘개혁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길 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는 곧 ‘권위주의로의 회귀’와 다를 바 없다. 그렇지않아도 DJP연대 진영엔 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정부주도형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했던 인물들이 많이 끼여들었다. 이는 바로 ‘경제발전’과 ‘민주발전’이 병행돼야 한다는 김차기대통령의 소신도 무너지는 조짐이다. ‘국민과 함께 하는 개혁’이 아닌 ‘혼자 뛰는 개혁’으로 돌아갈 우려도 있다. 이렇게 되면 김차기대통령의 정치적 이미지도 적지않게 손상될 수 있다. 선거에서는 40.3%에 그쳤지만 선거후에는 80% 이상으로 오른 김차기대통령의 지지도가 반전될 여지도 크다. 이렇듯 98년 정국은 취임 첫해를 맞는 김차기대통령에게는 매우 불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김차기대통령이 “국민의 지지속에 반드시 어려움을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밝혔지만 경제난을 어떻게 민주적 방법으로 풀어갈지에 역사적 평가가 걸려 있는 것같다. 〈송인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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