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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완전 비핵화’ 없는 終戰선언 이벤트는 의미 없다

입력 2018-06-04 00:00업데이트 2018-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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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간)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배웅한 뒤 기자들에게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빅딜이 있을 것이지만 무언가에 서명할 계획은 없다. 그날부터 프로세스가 시작되는 것이다”며 “나는 한 번의 회담에 이것(비핵화)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일괄 타결 주장에서 후퇴해 싱가포르 회담에서는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주고받는 선언적 의미의 ‘빅딜’을 하고, 비핵화 로드맵은 추가 협상을 통해 만들어갈 방침임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종전선언과 관련해 “우리는 전쟁을 끝내는 것을 얘기했다. 그런 가능성이 있다. 역사적으로 이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지켜보자”고 말해 종전선언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미 회담 취소와 번복, 김영철 면담 등의 전개 과정을 거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치와 전략이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본질보다 회담 성공이라는 정치적 업적 쌓기에 방점을 두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서명을 안 한다는 말은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완료 시기, 검증 및 사찰 방법, 핵무기 반출 등 CVID의 핵심을 이루는 대목들에 합의를 이루지 못했음을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비핵화 선언과 핵개발 동결만 이뤄놓은 채 길고 복잡한 이행 단계로 접어들면 이행 과정 어딘가에서 고꾸라지고 결국 비핵화 선언은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1994년 제네바합의, 2005년 9·19합의에서 경험했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행단계 초기에 핵무기 반출, 사찰단 활동 개시를 비롯해 핵동결을 뛰어넘는 폐기 절차가 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북한에 대해 ‘최대 압박’이란 용어를 쓰지 않겠다. 제재를 해제하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국제제재 시스템에 균열이 생길 수 있는 성급한 발언이다. 종전선언에 대한 그의 관심도 비핵화에 대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듯하자 종전선언이라는 ‘평화 이벤트’로 장식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사설
대북 경제원조 비용 분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빠지고 한국이 주로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적절치 않다. 물론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진다면 북한의 개혁개방과 경제건설을 위한 지원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선언적 수준의 비핵화를 전제로 제재가 이완되고 대규모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는 것은 한국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더구나 비핵화 합의 자체가 미완성인 지금은 대북 지원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를 논쟁할 시점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CVID의 달성 없는, 포장만 그럴듯한 회담으로는 미국민을 포함해 누구도 감동시킬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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