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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북한 나무 심기로 南北 ‘그린 데탕트’ 물꼬를 트자

입력 2014-01-03 03:00업데이트 2014-01-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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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비행기를 타고 압록강을 넘어 북한 땅으로 들어서면 창밖으로 헐벗은 산하가 내려다보인다. 벌목으로 붉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민둥산들이다. 한국이 산림녹화를 하기 이전인 1950, 60년대를 연상시키는 황량한 북녘 산은 경제난과 직결돼 있다. 계단밭을 만들고 땔감을 마련하느라 산을 깎고 애꿎은 나무를 마구 베어 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나무 심기를 전 군중적 운동으로 힘 있게 벌여 모든 산들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해야 한다”고 신년사에서 강조했다. 지난해엔 없던 내용이다. 그가 유학했던 스위스의 숲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북한은 전체 산림 중 32%가 황폐화돼 매년 서울 면적만큼씩 나무를 심어도 조림에 50년이 걸린다. 그래서 북한 전문가들은 겨레의 미래를 생각할 때 통일 뒤로 미뤄선 안 될 대북 협력으로 영유아 의료 및 영양 지원과 나무 심기를 꼽는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인공 조림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다. 박정희 정부 때 산림녹화를 새마을운동의 핵심 사업으로 밀어붙이다시피 했다. 7년간 총인원 360만 명을 동원해 나무를 심고 강력한 입산 금지 조치로 숲을 가꿨다. 가난하던 그 시절의 땀과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지금의 푸른 산을 만들었다.

수십 년간 축적된 우리의 경험은 북한에 무엇보다 유용할 것이다. 벌거벗은 북녘 산을 어떤 나무로, 어떻게 푸르게 만들 것인지 같은 땅에 사는 우리보다 더 잘 아는 전문가도 없다. 북한의 산림녹화는 남북이 정치적 이슈와 상관없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다. 우리가 묘목을 지원해도 북한이 이를 군사용으로 전용할 가능성은 작다. 박정희 정부 시절 새마을담당관으로 산림녹화를 주도했던 고건 전 국무총리가 북한 나무 심기에 큰 관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경색 때문에 진전을 못 봤을 뿐 역대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내부적으론 검토해 왔다. 김정은 제1비서가 운을 뗀 지금이 기회다.

사설
동아일보는 지난해 4월 창간 93주년 기획으로 통일코리아 프로젝트 ‘준비해야 하나 된다’를 추진하며 북녘 산림녹화를 제안했다. 환경 분야 협력을 통해 긴장 완화와 평화공존을 구현하는 ‘그린 데탕트(green detente)’가 가능할 수 있다. 그린 데탕트는 환경의 ‘녹색(그린)’과 긴장 완화의 ‘데탕트’를 합쳐 만든 말이다. 김정은 제1비서의 신년사엔 진의를 알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북녘의 산을 남녘처럼 푸르게 가꾸는 일에 관해선 남북 당국이 이념을 떠나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린 데탕트가 녹색 통일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내부에서도 더욱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통일의 그날까지 동아일보는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되는 나무 심기 사업을 성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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