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연두회견 공허했다

  • 입력 2001년 1월 11일 18시 54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11일 연두기자회견 내용은 국민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의 평가다. 솔직히 실망스럽다. 예고했던 ‘획기적 국정 쇄신책’도 보이지 않았고 정치 불안의 해소 방안 제시도 미흡했다.

무엇보다 “정치 불안정이 경제 악화와 사회 혼란의 근본 원인”이라고 스스로 진단하고도 정치안정을 위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대통령은 자민련과의 공조가 정치안정의 최우선인 것처럼 말해 지금의 정치불안이 정도(正道)와 원칙을 벗어난 자민련 교섭단체 만들어주기에서 비롯됐음을 애써 무시했다.

지난해 말의 ‘세 의원 꿔주기’가 정치에 대한 국민 불신과 여야 극한 대결을 불렀음을 왜 대통령은 모르는가. 그것도 모자라 ‘한 명 더 보내기’를 강행해 여론을 정면으로 받아치고도 “국민 여론을 최고로 두려워하겠다”고 하니 대통령의 말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야당과는 일시적 경색에도 불구하고 공생의 기반 위에서 협력한다”거나 “정도와 법치의 정치를 펴겠다”는 다짐도 국민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이기를 계속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야당을 타박하고 자기 반성에는 인색한 모습을 보이는 한 국민 불안은 해소되기는커녕 증폭될 뿐이다.

물론 오늘의 정치불안이 전적으로 여당과 대통령만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더라도 국정의 큰 책임을 지고 원만한 정치문화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대통령이 일차적으로 잘못된 점을 사과하고 그런 연후에 야당과 진지하게 개선 방안을 논의해 보겠다고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김대통령은 그러기보다 정치불안의 책임을 야당에 미루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의원 꿔주기’ 같은 비상식적인 일도 “국민 비판은 받겠지만 야당의 비판은 온당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러고서야 야당을 진정한 대화상대, 국정 파트너로 생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여당 총재로서 회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초에 턱없이 국민을 불안케 한 영수회담의 결렬사태에 대해서도 우선 대통령은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옳았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들이 감정 싸움으로 국민의 희망을 저버리고도 적절한 사과 없이 얼버무리는 것은 여론을 최고로 두려워하는 정치가 될 수 없다.

김대통령이 말한 정도의 정치, 공생의 정치는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정치세력간의 싸움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어떻게 착근시킬지 거듭 생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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