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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뉴욕 뒷골목 낙서, 런던을 흔들다

입력 2018-02-06 03:00업데이트 2019-02-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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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바비컨아트갤러리 ‘바스키아전’
흑인 야구 영웅 ‘행크 에런’의 이름 위에 왕관을 그려 넣은 헬멧을 쓰고 있는 장미셸 바스키아(왼쪽 사진). 1970년대 후반 사우스브롱크스 할렘의 클럽에서 힙합 음악을 틀었던 바스키아는 동료 음악가 람엘지와 그라피티 아티스트 톡식의 얼굴을 ‘할리우드 아프리칸스’(1983년·오른쪽 사진)에 그렸다. 좌측 사람 모양 형상은 흑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해티 맥대니얼을 상징한다. 바비컨 아트 갤러리 제공·ⓒ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지난달 27일 오후 8시(현지 시간)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가 ‘더 시티(The City)’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러나 이곳에 자리한 ‘바비컨 아트 갤러리’ 인근은 젊은 예술가, 가족, 휠체어를 탄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으로 북적였다. 영국에서 처음 열린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회고전 ‘바스키아: 붐 포 리얼(Basquiat: Boom for Real)’을 보기 위한 행렬이었다. 티켓 부스에선 “현재는 매진이라 오후 10시부터 입장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시 마감 하루 전날 갤러리는 밤 12시까지 문을 열었다.

1960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라피티 화가 바스키아는 28세로 요절하기까지 ‘낙서를 예술의 경지로 이끈 예술가’ ‘블랙 피카소’란 상찬을 받았다. 약물 복용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지라 작품 수가 적은 데다 대부분 개인 수집가가 소장해 경매에서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런던에서 첫 회고전이 열리기까지 20여 년이나 걸린 이유다. 이 때문에 지난해 9월 시작한 전시는 바비컨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찾았다고 한다.

바스키아의 작품은 물론이고 노트에 적은 시, 길에서 팔았던 그림엽서와 작곡한 음악 등을 통해 ‘인간 바스키아’를 보여준 전시장은 갤러리를 넘어 ‘평생 학교’가 됐다. 아트 앤드 디자인 BTEC(영국 공인 교과과정)를 밟고 있는 15∼17세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하며 작품 분석을 적어 내려가는 풍경도 보였다. 바스키아의 생전 영상을 감상하던 로즈메리 밀러 씨(63·여)는 “런던의 장점은 문화적 기회를 평범한 사람도 손쉽게 누릴 수 있다는 점”이라며 “그가 살아있었다면 더 좋은 작품을 보여줬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장미셸 바스키아의 1982년 작품 ‘Famous’가 걸린 전시장의 모습. 복층 구조 갤러리의 14개 방으로 구성된 전시는 100여 점의 회화와 노트, 소장 도서, 그림엽서 등 작가를 다각도로 조명했다. 바비컨 아트 갤러리 제공·ⓒ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
100여 점에 이르는 회화는 그가 왜 젊은 예술가의 뮤즈인지 무언으로 설명했다. 랩을 하듯 수차례 눌러쓴 글씨와 동시대 힙합, 재즈 문화에서 차용한 시각 언어가 신선한 감각을 자극했다. 힙합 아티스트 제이지는 2013년 앨범에서 “내가 새로운 장미셸”이라 노래했고 수십억 원대 작품들을 소장했다. 지난해 5월에는 일본 기업인 마에자와 유사쿠가 경매에서 ‘무제’를 1억1050만 달러(약 1245억 원)에 구매하기도 했다.

바비컨은 “1월 마지막 주말 3일간 7000여 명이 전시장을 찾았으며 전체 최소 21만6000명이 다녀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평균 티켓 가격(16파운드·약 2만4000원)을 감안하면 입장 수익만 51억 원을 넘는다. 제인 앨리슨 비주얼아트 최고책임자는 “사상 최대의 성과에 전율했고 젊은 세대가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었기에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전시의 주체가 공공 갤러리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바비컨은 런던 특별행정구역 ‘더 시티’에서 운영하는 공립 예술센터다. 그럼에도 대중성과 수익성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 젊은 예술가 등 다양한 세대가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며 얻게 될 가치를 환산하면 엄청난 경제·문화적 효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시장에서 만난 런던 문화학교 ‘RP 인스티튜트’를 운영하는 미술사가 전하현 씨도 이런 흐름을 주목했다. 그는 “미국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영국 사회에 던진 충격이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은 틀림없다. 파급 효과만으로도 훌륭한 전시”라며 “최근 영국은 전시만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창조산업’형, 대중도 쉽게 접근하는 ‘소통’형 전시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국내 공공 미술관도 학술적 역할을 넘어 예술의 저변을 확대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울림이 컸다.

런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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