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잡는 30대 명의 “신약 쏟아져 말기암도 완치 가능”

김상훈 기자 입력 2020-07-04 03:00수정 2020-07-18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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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베스트 닥터]<6>고영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고영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혈액암 분야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의사다. 최근에는 혈액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백혈구를 찾아냄으로써 암을 예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골수는 피를 만드는 공장이다. 이 골수에 문제가 생길 때 혈액암이 발생한다. 악성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 백혈병 등이 대표적이다. 악성 림프종은 매년 6000여 명, 다발성 골수종은 2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한다. 고영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39)는 악성 림프종과 다발성 골수종 분야에서 이름이 꽤 알려진 ‘베스트 닥터’다. 대부분의 베스트 닥터가 40대 중반 이후지만 고 교수는 마흔 살이 되지 않았다. 일찌감치 30대 초반에 서울대 의대 교수가 됐다. 전형적인 ‘천재 유형’인가 싶은데, 괴짜 냄새도 솔솔 풍긴다.

2013년 공중보건의로 근무할 때 사법시험에 도전한 적이 있다. 의사로서 사람을 고치는 ‘기술’에만 매몰되지 않기 위해, 사회에서 통용되는 실제 규칙과 철학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법을 공부했다고 한다. 1차 시험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2차 시험 준비는 하지 않았다. 고 교수는 “원하는 것을 이룬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본업인 의사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의대에 입학한 후로 줄곧 과학과 의학이 접목된 분야를 찾았다. 그래서 선택한 진료과가 혈액종양내과였다. 신약 항암제야말로 과학의 집약체라 여겼던 것. 실제로 혈액암 분야에서는 외과적 수술보다는 첨단 항암제로 치료할 때가 많다.


● “악성 림프종 5년 새 생존율 80%로 높일 것”
악성 림프종 치료는 어떻게 할까. 고 교수는 3년 전의 40대 소방관 사례를 들려줬다. 우선 강력한 항암제를 투입했다. 골수의 병든 세포를 모두 ‘청소’하기 위해서다. 이어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했다. 항암제 투입과 조혈모세포 이식을 병행하는 치료법은 가장 널리 쓰이면서도 강력하다. 다만 항암제 용량이 높아 환자의 고통이 큰 게 단점이다. 이 소방관은 현재 사실상의 완치 판정을 받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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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교수는 최근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바이오 기업이 함께 진행하는 악성 림프종 임상 시험에 참여하고 있다. 두 종류의 신약을 병행 투입하는 새로운 치료법인데 지금까지는 결과가 좋다. 50% 이상의 환자에게서 효과가 나타났고 일부는 암 덩어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현재 악성 림프종의 완치율은 60%를 조금 상회한다. 고 교수는 “새로운 신약 후보 물질도 속속 나오고 있어 완치율이 5년 이내에 80% 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말기 혈액암 환자도 충분히 오래 생존”
60대 초반의 다발성 골수종 환자 A 씨를 치료하기 시작한 건 2012년이었다. 항암 치료가 효과를 보는 것 같더니 4년 만에 재발했다. 원래 썼던 약은 더 이상 듣지 않았다. 고 교수는 A 씨에게 적합한 신약을 찾아냈다. 마침 새로 개발돼 임상 시험 중인 약 중에 A 씨에게 딱 맞는 게 있었다. 2년 후 A 씨의 암이 도졌다. 이후 같은 과정이 반복됐다. 고 교수는 신약 리스트를 뒤졌고, A 씨에게 적합한 약을 찾아냈다. 다시 1년의 평화. 그 이후로 재발과 신약 찾기가 반복됐다. 요즘 A 씨는 이 신약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발성 골수종은 이처럼 재발이 잦다. 3, 4회는 기본이고 5회 이상 재발하는 사례도 꽤 있다. 고 교수는 “신약으로 교체하면서 생존 기간을 5년, 10년으로 늘리고 있다”며 “이런 방식을 통해 말기에도 사실상의 완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다발성 골수종을 “신약의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병”이라고 했다.

● 첨단 치료법 속속 등장
혈액암 분야에서 최근 ‘세포 치료’가 외국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면역 세포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암 세포를 잡아먹도록 하는 방법. 연구 결과 환자 모두에게서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이미 환자 치료에 도입한 상태. 국내에서는 다발성 골수종의 경우 이르면 올해 9월, 나머지 혈액암은 내년 임상 시험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 교수는 혈액암과 관련한 병원 내 바이오벤처도 만들었다. 5년 전 발표된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 논문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논문에 따르면 암 초기 혹은 암에 걸리기 직전의 혈액에서 돌연변이 백혈구가 검출된다. 이 백혈구가 혈액암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이 돌연변이 백혈구를 찾아내 제거하면 암 발병 전 단계에서 혈액암도 예방할 수 있다는 게 고 교수의 생각이다.

혈액 검사만 하면 이 백혈구를 찾아낼 수 있다. 고 교수에 따르면 국내 60대 이상 인구의 10%에서 이런 돌연변이 백혈구가 발견된다. 이와 관련한 동물 실험을 올해 안으로 진행한다. 내년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에 돌입할 계획이다.


▼ 고 교수가 말하는 혈액암 예방법 ▼
“비타민C 섭취 늘리고 규칙적 생활 바람직… 유해환경 노출은 피해야”

암이 발생하는 원인은 셀 수 없이 많다. 원인조차 가늠이 되지 않을 때도 적지 않다. 그러니 의사들은 원칙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고, 유산소 운동을 1주일에 3회 이상 하라.”

그래도 뭔가 새로운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영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최근 주목을 받았던 혈액암 예방법 일부를 소개한다.

첫째, 비타민C를 많이 섭취한다. 이와 관련한 연구 논문은 3년 전부터 ‘셀’ ‘사이언스’ 등 세계적인 과학 저널에 실렸다. 논문의 요지는 고용량의 비타민C를 투입하면 혈액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백혈구의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동물 실험에서 이 사실을 입증했다. 아직까지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고 교수는 “임상 시험까지 진행되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비타민C의 부작용이 크지 않아 환자들에게도 섭취를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 밤낮이 자주 바뀌지 않도록 주의한다. 고 교수에 따르면 우리 몸에는 암 발생을 막는 유전자들이 있다. 사람마다 이 유전자의 생체 리듬은 조금씩 다르다. 이를테면 이 유전자가 밤에 활동을 많이 하다 낮에 둔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사람도 있다. 고 교수는 “밤낮이 자주 바뀌면 이 생체 리듬이 깨져 혈액암 발병률이 높아질 수 있다”며 “가급적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셋째, 화학물질과 같은 유해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고 교수는 “혈액암 환자의 10% 정도가 유해 환경에 노출됐거나 그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유해 환경에 노출된 직업이라면 적극 검진을 받는 등 관리가 필요하다.

조기 발견은 무척 중요하다. 대체로 다발성 골수종은 고령자에게서 많이 발생하며 악성 림프종은 젊은 시기에도 발병하는 특징이 있다. 다발성 골수종은 혈액 검사를 통해 예측할 수 있다. 림프절에서 멍울이 만져진다면 악성 림프종을 의심해 봐야 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고영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혈액암 예방법#림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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