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향한 싸늘한 시선, 감염공포보다 더 무서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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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 때 처음으로 ‘집단 격리’됐던 前간호사 김현아 씨
“사명감으로 일하는 간호사, 지치지 않게 응원해줬으면”

메르스 사태 당시 간호사로 활동한 김현아 씨가 작업실 에서 대본을 쓰고 있다. 작은 사진은 간호사로 일할 당시 마스크와 보호구를 쓴 김 씨. 김현아 씨 제공
메르스 사태 당시 간호사로 활동한 김현아 씨가 작업실 에서 대본을 쓰고 있다. 작은 사진은 간호사로 일할 당시 마스크와 보호구를 쓴 김 씨. 김현아 씨 제공
“의료진을 향한 싸늘한 시선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죠.”

외과 중환자실 간호사로 21년 넘게 일한 김현아 씨(45)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2015년 6월 1일 김 씨는 메르스 첫 사망자가 발생한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에서 중환자실 환자 36명과 의료진 94명과 함께 코호트 격리(집단 격리)됐다. 김 씨를 비롯해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일부 의료진은 병원 내 공간 문제로 자가 격리를 병행했다. 김 씨가 당시 생활을 적은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맨머리를 들이밀고 싸우겠다”는 일기가 언론에 공개돼 ‘메르스 전사’로 주목받기도 했다.

집과 중환자실만을 오가던 김 씨는 매우 외로웠다고 털어놨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전용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만을 사용해야 했다.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없었다. 방역 마스크(N95)를 꽉 껴서 피부에 발진이 생기도록 환자를 돌봤지만, “환자를 내보내 달라”는 보호자의 항의와 욕설도 심심찮게 들어야 했다.

김 씨는 지금 이러한 경험을 담은 자신의 저서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를 드라마화하기 위한 대본을 쓰고 있다. 전문 작가에게 대본 집필을 맡기는 방안도 생각해 봤지만, 간호사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건 자신이라는 생각에 직접 펜을 들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지금 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 씨는 “메르스 때보다는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서 사람들의 불안감도 덜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는 확진자가 생긴 병원도 공개가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비교적 환자 동선이 일찍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르스에 비해 “환자가 훨씬 많이 생긴 현상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병원을 중심으로 병이 퍼졌지만, 코로나19는 신천지예수교(신천지)를 중심으로 생긴 감염이 병원까지 퍼지는 양상이다.

김 씨는 코로나19로 격리된 의료진들에 대해 특히 안타까움을 전했다. 지난달 22일 경북 청도대남병원을 시작으로 부산 아시아드요양병원, 경남 한마음창원병원 등 코로나19로 코호트 격리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격리 당시 외로움뿐 아니라 본능적인 두려움도 컸다. “메르스로 사망하신 환자가 비닐에 꽁꽁 싸인 채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던 상황이었어요.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순간 두려웠어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심할 때마다 “중환자실에 이미 나쁜 균 다 들어왔을 텐데, 메르스 정도는 이겨낼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코로나19로 맨 처음 코호트 격리됐던 청도대남병원에 대해서는 “코호트 격리를 하기에는 적절한 환경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청도대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에서는 환자 대부분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청도대남병원은 음압시설은커녕 침대조차 없는 공간에서 환자 여러 명이 공동생활을 해야 했다. 현장평가를 실시한 전문가들이 환자들을 전문 치료기관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자 결국 정부는 중증환자 전원 이송을 결정했다.

최근 포항의료원 간호사 16명이 무단 사직했다는 보도가 잘못 나왔을 때는 분개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해당 간호사들은 원래 1, 2월 중 사직을 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가 터지자 예정보다 오래 근무했다. 김 씨는 “처음에 무단 사직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간호사는 그런 마인드로 할 수 없는 직업이니까요.” 동시에 간호사들이 현장에서 지치지 않도록 평소에 처우 개선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또 모든 의료진에게 보내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5년 전 코호트 격리 기간 매일 뉴스를 봤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기 때문이다. 뉴스에 달리는 악플에는 기운이 빠지고, 응원 댓글에는 다시 힘을 얻었다고 했다. “의료진도 사람인데, 순간순간 두렵고 무서워요. 전쟁터 맨 앞에 있는 사람들을 잘 싸우게 만들어 주는 건 국민들의 몫이라고 봐요.”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김현아#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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