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동아]자폐인 높은 기억력-집중력 살려 소프트웨어 컨설턴트로 육성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더 건강한 미래를 위한 헬스케어 혁신가를 만나다 <4> 장애인 고용문제 혁신한 토킬 손

스페셜리스테른 소속 자폐 컨설턴트들이 파견을앞두고 소프트웨어 교육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베링거인겔하임 제공
스페셜리스테른 소속 자폐 컨설턴트들이 파견을앞두고 소프트웨어 교육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베링거인겔하임 제공
덴마크 출신 토킬 손(Thorkil Sonne)은 소프트웨어 컨설팅 회사 ‘스페셜 리스테른’을 설립했다. 토킬 손은 자폐인에게 전문교육을 실시하고 소프트웨어 컨설턴트로 육성해 장애인의 고용 문제를 해결한 헬스케어 혁신가다.

토킬 손은 자폐인을 위한 전문기술 교육과 인재 양성, 장애인 고용까지 해결한 혁신적인 시스템 개발로 지난 2009년 베링거인겔하임과 사단법인 아쇼카의 전 세계적인 사회공헌 캠페인 ‘메이킹 모어 헬스(Making More Health)’의 펠로우로 선정됐다. 메이킹 모어 헬스의 펠로우는 전 세계 헬스케어 혁신 사업가를 대상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되며 장애, 응급질환, 희귀질환 등 다양한 헬스케어 영역에서 국제적 차원의 변화를 이끄는 활동을 펼친다.

토킬 손은 자폐인들에게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거나 대량 데이터를 입력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편견으로 직업을 찾기 힘들었던 자폐인들의 고용 문제를 해결했다.

토킬 손이 자폐인의 고용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자폐 진단을 받은 아들의 영향이 컸다. 정보기술(IT)기업에 종사하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토킬의 막내아들은 세 살 되던 해 자폐 진단을 받았다. 아들의 치료를 위해 자폐에 대해 연구하고 관련 단체에 가입하며 정보를 수집하면서 비교적 사회 복지가 잘 구축 돼있는 덴마크에서도 자폐에 대해서는 사회적 배려와 지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자폐인이 사회적 편견으로 직업을 가지기 어렵고 자립적인 경제생활을 하기 힘든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낮은 경제활동참가율은 이들을 부양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자폐인과 지적장애인 고용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국내에서도 토킬 손의 혁신적인 고용 시스템은 주목할 만하다. 2016년 국내 장애인 경제활동조사에 따르면 자폐인을 포함한 지적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1.6%로 매우 저조하다. 지적장애인의 실업률은 11.6%로 전체 인구 실업률 3.7%보다 약 3.1배 높다. 자폐인이 가진 다른 역량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는 일은 자폐인과 가족, 사회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토킬 손의 시스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의 아이디어는 IT 분야 인재들의 특성과 자폐 증상에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두 집단 모두 비상한 기억력과 집중력을 가지고 있으며 목표가 달성되기 전까지 일을 멈추지 않았다. 토킬은 일반인과 다른 자폐인의 특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주목했다.

전체 직원의 75% 이상이 자폐 컨설턴트로 구성돼 있는 스페셜리스테른은 컨설턴트로서의 기술적 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통 능력을 키우는 5개월간의 전문 교육과 평가를 통해 인재를 양성한다. 교육을 이수한 컨설턴트들은 테스트를 필요로 하는 고객사에 파견돼 근무한다. 스페셜리스테른은 파견된 컨설턴트들에게 안락한 근무 공간을 조성하고 명확한 지시 사항을 주는 것 등 자폐인의 특성을 반영한 계약조건을 요구한다.

이 같은 기본 조건이 지켜졌을 때 자폐인 컨설턴트의 역량은 높은 성과를 가져왔다. 타 컨설팅 회사의 결함률이 5%인 것과 비교해 스페셜리스테른 컨설턴트의 결함률은 0.5%에 불과했다. 스페셜리스테른은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IBM, 오라클, SAP와 같은 굴지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고객사로 두고 미국, 스페인, 호주 등 전 세계 10개국에 지사를 낼 정도로 확장했다. 한 기업과 2020년까지 650명의 자폐 컨설턴트를 고용하기로 정식 파트너십을 맺기도 했다.

토킬 손의 아이디어는 소프트웨어 분야뿐만 아니라 제약, 회계, 제품 검열 등 수많은 분야에 적용돼 자폐인의 고용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실제 STEM 분야(과학, 기술, 공학, 수학)에서 자폐인의 능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그 잠재성에 주목하고 있다. 스페셜리스테른은 자폐뿐 아니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로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토킬 손은 장애인들이 가진 장점을 활용해 장애인 고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시킨 이 아이디어를 ‘민들레 모델(dandelion principle)’이라고 이름 붙였다. 잡초가 아닌 약초가 되는 민들레는 장애인의 능력 개발과 고용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회혁신가들에게 영감이 되고 있다.

토킬 손은 메이킹 모어 헬스 네트워크에 속해 있다. 전 세계의 각 분야 리더, 투자자, 혁신기업가 등과 교류하며 더 큰 파급력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제공 받고 있으며 베링거인겔하임과의 협력을 통해 사업 영역에 대한 확장 및 조언을 얻고 있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메이킹 모어 헬스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하다.

황효진 기자 herald99@donga.com
#스페셜 리스테른#토킬 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