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이끈 KIST 성공신화, 베트남에서 다시 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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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베트남 공동설립 ‘VKIST’ 초대 원장 금동화 전 KIST 원장

베트남-한국과학기술연구원(VKIST)의 초대 원장으로 임명된 금동화 전 한국과학기술원(KIST) 원장은 “KIST 설립 정신을 기반으로 설립하지만 현장에 맞도록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베트남-한국과학기술연구원(VKIST)의 초대 원장으로 임명된 금동화 전 한국과학기술원(KIST) 원장은 “KIST 설립 정신을 기반으로 설립하지만 현장에 맞도록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1965년 5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을 찾았다. 린드 존슨 미국 36대 대통령을 만나 경제원조를 약속받기 위해서였다. 회담을 마치고 발표된 공동성명문 마지막 줄엔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 포함됐다. 한국의 ‘과학기술연구소 건립을 돕는다’는 내용이었다. 연구소 건립을 책임질 초대 원장으로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화학야금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형섭 박사(전 과학기술처 장관)가 낙점됐다. 그는 미국 측에 “한국 실정에 맞는 연구가 필요하니 산업연구 중심의 ‘바텔연구소’ 시스템을 도입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렇게 설립한 연구소는 산업기술을 선도적으로 연구해 당시 100달러가 채 안 되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50년 만에 3만 달러 가깝게 높이는 데 크게 일조했다. 국내 과학기술인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일화다.

이런 KIST의 성공신화를 베트남에서 다시 쓰겠다며 ‘제2의 최형섭’이 되길 자처한 국내 과학기술인이 있다. KIST 20대 원장을 지낸 금동화 박사(66)가 주인공이다. 베트남 과학기술부는 한국과 베트남 정부가 공동으로 설립 중인 ‘베트남-한국과학기술연구원(VKIST)’의 초대 원장으로 10일 금 박사를 공식 임명했다. 국내 KIST를 비롯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발전사를 지켜봐온 경험 많은 과학기술인이라는 점에서 양국의 기대가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베트남 실정이 다른 데다 외국인 과학자들을 이끌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12일 VKIST 비전과 철학을 구상 중인 금 원장과 서울 홍릉 KIST에서 만났다.

금 원장은 “VKIST 설립에 성공하면, 베트남 외에 다른 나라에도 좋은 사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정착을 잘해야 한다”며 의욕을 나타냈다. 어려움도 있겠지만 충분히 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KIST 성공사례는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중에 베트남이 먼저 부각된 까닭은….


“베트남은 한국의 중요한 경제 파트너다. ‘넥스트 차이나’로 불릴 만큼 넓은 국토와 충분한 인구를 갖춰 성장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경제성장 사례를 문서 등으로 외국에 공유한 적은 많지만 실제로 우리 정부가 직접 나서 연구기관의 설립 자체를 돕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초적 산업기술을 전수하고, 함께 고급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나누면 서로에게 득이 된다. 국내 과학기술계의 명예도 높이는 일이다.”

―KIST의 모델을 가지고 간다지만 현지 상황이 우리나라 1960년대와는 다르지 않나.


“현재 베트남 경제는 우리나라 1980년대와 비슷하다. 우리와 달리 자본도 어느 정도 있고, 사회 구조도 성숙돼 있다. KIST 설립 초기 우리는 사람이 거의 없어 귀국과학자 몇 사람으로 시작했다. 이에 비해 베트남은 대학에서 인력을 양성 중이고, 여러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력자원을 어느 정도 갖췄고 연구개발 경험도 있다. 초기 투자비는 7000만 달러(약 784억 원) 정도인데, 초기 출범비 정도다. 규모를 계속 키워나가야 하는데, 이는 베트남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내야 한다. 10년 뒤에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그렇다면 초창기 KIST 설립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하지 않나.


“관건은 산업기술이다. 이 점에서 KIST 모델이 주효하리라고 본다. 베트남의 GDP 절반을 해외 투자기업이 주도한다. 작년 베트남 수출의 70%가 외국계 회사 실적이다. 나머지 절반이 자국 산업인 셈인데, 아직도 농업 등 1차 산업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연구자들도 산업화 경험이 취약하다. 처음에 베트남과 협력을 논의하면서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함께 어떤 부분에서 협력이 가능한지 다방면으로 논의했다. 그 과정에 KIST 설립 모델이 유효할 것으로 보고 사업을 추진했다. KIST의 정신을 따르지만 현장에 맞게 운영할 생각이다.”

―베트남 내부에선 개혁자인 셈인데…, 반발은 없을까.

“우려하는 부분이다. 사실 처음 KIST가 출범할 때도 그랬다. 산업전문 연구기관이 출범한다고 하니 대학 등에서 ‘기존에 하던 연구나 더 잘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베트남에서도 분명 유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를 알고 서로 논의하며 협력해야 한다. 이런 부분은 계속 공부하면서 만들어 갈 계획이다. 그러려면 내부 의견일치도 중요하다. 현지 연구원들도 자기 기술을 사업화하려는 열정이 있는 사람을 우선해서 선정할 생각이다.”

―출범한 연구소가 베트남 현지에 녹아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할 듯싶다.

“혼자 가지 말고 주위에 눈을 돌려야 한다. 우선 연구소 설립 전에 베트남 과학계 리더들이 참여하는 정기 포럼부터 만들 생각이다. 현지 사회에도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어느 나라건 세금을 쓰는 연구소라면 시민들에게도 반드시 애정을 보여야 한다. 여러 방법을 고민 중이다. 인근 학교를 찾아가 주니어공학교실을 연다거나, 다양한 과학문화활동을 펼치면서 소통할 생각이다.”
 

  
전승민 enhanced@donga.com·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금동화#vkist#한국-베트남 공동설립 vk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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