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용 O형 혈액 ‘실종’ 미스터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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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형 혈액 만성부족 왜?

“O형 혈액 급구!”

일요일인 16일에도 문을 연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엔 어김없이 이런 안내문이 붙었다. 이상하게도 O형 혈액은 항상 부족해 일선 헌혈의집이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급구’ 안내문을 붙인다. 7년간 헌혈의집에서 근무했다는 한 직원은 “‘O형 급구’를 붙이지 않은 날을 손으로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가 보유한 수혈용 적혈구제제는 4.2일분에 해당하는 2만1682유닛(1유닛은 320∼400mL)이었지만 O형은 2.4일분으로 B형(6일분), AB형(5.7일분), A형(3.7일분)에 비해 크게 부족했다. 혈액 보유량이 3일분 미만이면 ‘주의’ 단계에 해당해 혈액 보유 기관 사이에 협조체제가 가동된다. O형 혈액 부족에 따른 기관별 협조 빈도는 다른 혈액형에 비해 훨씬 높다.

이같이 O형 혈액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현상은 의료계의 대표적인 미스터리다. 한국인의 혈액형 분포는 A형 34%, O형 28%, B형 27%, AB형은 11% 순인데, 2015년 헌혈 실적에 따르면 전체 306만9701건의 헌혈 중 O형은 83만9332건(27.3%)으로 O형 혈액형 분포와 큰 차이가 없다. O형 혈액형 보유자가 특별히 헌혈에 소극적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보건당국은 공급량에 문제가 없다면 수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보고 2014년 O형 환자가 수술할 때 다른 환자보다 수혈을 더 많이 받는지 조사한 바 있다. 혈액형을 구분 짓는 유전자의 형질에 따라 특정 질환에 더 잘 걸릴 수 있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에 착안한 연구였다.

하지만 2011∼2013년 종합병원 3곳에서 수혈량이 가장 많았던 질환 30개의 환자를 혈액형별로 분석한 결과 O형 환자가 특정 질환에 잘 걸린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O형 혈액이 부족한 원인을 찾는 연구는 해외에서도 좀처럼 이뤄지지 않아 당시 우리의 연구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또다시 미궁에 빠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일부 병원이 관행적으로 교차 수혈을 실시해 O형 만성 부족 현상이 나타났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즉 A형과 B형 혈액을 교차 수혈하면 환자의 몸속에서 피가 굳어 치명적이지만 O형은 다른 혈액형 보유자의 체내에서도 대체로 응고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환자의 혈액형을 검사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상태가 위중하거나 A, B, AB형 혈액을 구할 수 없는 경우 응급용으로 O형 혈액을 쓸 수 있다. 권계철 충남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규모가 작은 병·의원이 응급용으로 O형 혈액을 비축해뒀다가 폐기 직전 다른 혈액형 환자에게 수혈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혈이 이뤄지는 전국 병·의원 2500여 곳 중 정부의 ‘혈액 안전 감시체계’ 대상은 100여 곳에 불과해 교차 수혈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1, 2년 주기로 실시하는 의료 적정성 평가에 ‘수혈 적정성’ 항목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김준년 질병관리본부 혈액안전감시과장은 “감시 의료기관을 늘려가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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