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엔 과학자 106명 ‘집단항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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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립 교수 노벨물리학상 누락으로 본 역대 수상 논쟁

과학저널 ‘네이처’ 11월 25일자(7323호) 486쪽에 한 과학자의 인터뷰가 실렸다. 올해 노벨물리학상 선정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으로 우리나라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에는 ‘노벨위원회의 실수로 한국인 최초 노벨상을 놓쳤다’는 내용으로 보도됐기 때문이다. 노벨위원회가 그래핀이란 물질을 연구한 논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미국 컬럼비아대 김필립 교수를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노벨과학상을 둘러싼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 노벨위원회 실수했나

네이처에 실린 기사는 노벨위원회가 물리학상을 발표하면서 만든 해설 문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으로 시작된다. 기사는 문서에서 몇 군데 오류를 지적한 편지를 위원회에 보낸 미국 조지아공대 발터르 더 히에르 교수의 주장과 그에 동의하는 몇몇 과학자의 논평을 싣고 있다.

네이처 기사는 지적된 오류를 수정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문제가 없다는 노벨위원회의 입장도 소개했다. 노벨위원회 외부회원인 스웨덴 샬메르스공대 페르 델싱 교수는 “물론 다른 사람은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다”며 “노벨위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과학자들도 대체로 “한국인 학자가 받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노벨위원회가 실수를 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 과학자 100여 명이 서명한 항의 서신 보내기도

노벨상 수상자를 제대로 뽑았는가에 대한 논쟁이 가장 심각했던 최근 사례는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이다. 대표적인 바이러스 질환인 에이즈와 자궁경부암의 원인 바이러스를 찾아낸 과학자들(에이즈 2명, 자궁경부암 1명)이 수상했다. 이 가운데 에이즈 바이러스 수상자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수상자인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 박사와 뤼크 몽나티에 박사가 에이즈 환자의 몸에서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한 것은 맞지만 이 바이러스가 에이즈의 원인임을 입증하고 진단시약까지 개발한 미국국립보건원(NIH)의 로버트 갤로 박사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노벨 과학상 시상식은 매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사진 제공 노벨위원회
노벨 과학상 시상식은 매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사진 제공 노벨위원회
이듬해 1월 9일자 과학저널 ‘사이언스’ 독자 서신란에는 이탈리아 산라파엘레대 귀도 폴리 교수 등 생명과학자 106명의 명의로 된 ‘찬양되지 않은 영웅 로버트 갤로’라는 제목의 서신이 실렸다.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자 선정이 부당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이 짧은 편지는 노벨위원회에 대한 ‘집단 항의’라고 할 만하다.

1974년 물리학상도 논쟁이 있었다. 당시 앤터니 휴이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펄사(자기장을 띠고 빠르게 자전하는 중성자별)를 발견해 상을 받았다. 그런데 실제로 발견한 사람은 지도 학생인 조셀린 벨 씨로 여성이기 때문에 받지 못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외에도 1954년에 양자역학의 기초가 되는 파동함수를 통계적으로 해석해 물리학상을 수상한 막스 보른 독일 괴팅겐대 이론물리연구소장은 경쟁자인 아인슈타인의 반대로 수십 년간 상을 받지 못했다.

○ 어느 연구자 집단에 속하는가도 영향

노벨위원회의 각 분과는 그해 노벨상 수상자 후보를 추천하는 권한이 있다. 분과별로 5인으로 구성돼 있는데 주로 스웨덴 과학자들이 맡고 있다. 이들이 어떤 분야를 선정할지 정할 때나 수상자를 물색할 때 누구에게 어떤 정보를 받느냐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목소리가 큰 소사이어티(해당 분야의 주류 연구자 집단)’에 속할수록 수상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얘기다.

원자 한 층으로 이뤄진 ‘탄소 3형제’인 풀러렌, 탄소나노튜브, 그래핀 분야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맏형인 풀러렌은 탄소원자 60개가 축구공처럼 결합돼 있는 분자로 1985년 미국 라이스대 화학과 리처드 스몰리 교수팀이 발견했다. 그는 이 업적으로 199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둘째인 탄소나노튜브는 탄소원자가 죽부인처럼 배열된 분자로 1991년 일본전기회사(NEC)의 이지마 스미오 박사(현 성균관대 나노과학기술원 원장)가 발견했다. 막내인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천처럼 펼쳐져 있는 구조로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 물리학과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가 흑연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러다 보니 애매해진 건 탄노나노튜브를 연구한 이지마 박사다. 지난해 그래핀 대량 합성에 성공한 성균관대 화학과 홍병희 교수는 “탄소나노튜브 연구는 화학자 그룹과 물리학자 그룹으로 나뉘어 있어 화학상 쪽도, 물리학상 쪽도 힘을 실어주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올해 노벨 과학상 시상식은 10일 오후 4시 30분(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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