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3년 3월 22일… 하늘엔 ‘반란의 기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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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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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신라시대 천문관측 재현행사

1400년전 별자리는 17.8도 서쪽에
화성이 사망 뜻하는 귀자리에 근접
점성술로 풀면 병란-질병발발 조짐

선덕여왕이 신라를 다스리던 서기 633년에 세운 첨성대는 신라의 천문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첨성대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천문학자 사이에서는 첨성대가 밤하늘을 관측하는 천문대였다는 설이 더 우세하다. 사진 제공 한국천문연구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선덕여왕이 신라를 다스리던 서기 633년에 세운 첨성대는 신라의 천문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첨성대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천문학자 사이에서는 첨성대가 밤하늘을 관측하는 천문대였다는 설이 더 우세하다. 사진 제공 한국천문연구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왕위에 오른 선덕여왕(이요원 분·아래 사진)은 미실(고현정 분)처럼 하늘의 계시를 왜곡해 백성의 눈과 귀를 막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천문기상에 관한 모든 것을 공개하고 서라벌(현재 경주)에 만백성이 볼 수 있는 천문대를 세운다. 이것이 바로 633년 세워진 첨성대다. 당시 신라 천문관원들은 약 9m 높이의 첨성대에 올라 매일 밤하늘을 관찰했을 것이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자, 국보 제31호인 첨성대. 그곳에서 바라본 약 1400년 전 밤하늘은 어땠을까. 22일 첨성대에서 벌어질 ‘신라의 밤하늘 관측 행사’를 시간대별로 미리 따라가 봤다.

○ 첨성대는 정말 천문대였을까


춘분을 하루 넘긴 22일 오후 3시 첨성대 앞. 한국천문연구원 전용훈 선임연구원 등 천문연 소속 천문학자 6명과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이용삼 교수 등 10여 명이 모인다. 신라시대 천문 관측 과정을 재현한다는 설렘에 고요하던 첨성대 주변이 금세 분주해진다.

이들은 2시간 동안 조선시대에 사용됐던 천제관측기기 소간의와 18인치 돕슨식 망원경 1대, 5인치 굴절망원경 2대 등 관측기기를 첨성대 주변에 설치한다. 또 첨성대 창문의 위치, 밑받침인 기단석과 꼭대기 정자석의 모서리각 등도 측정한다.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관찰한 일몰 방위각과 첨성대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일몰 방위각은 정남쪽과 해가 진 곳 사이의 각도를 말한다.

일부에서는 첨성대가 관측 시설이 아니라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라고 주장한다. 첨성대의 창문이 땅에서 4.16m 높이에 있어 접근하기가 불편하고, 불빛이 밝은 궁궐에서 가까워 천체현상을 관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여대 사학과 정연식 교수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선덕여왕의 성조(聖祖)의 탄생, 첨성대’라는 논문에서 “첨성대는 여왕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모인 천문학자들은 첨성대가 관측시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용훈 선임연구원은 “창문 방향이나 모서리의 각도는 춘분, 하지 등 각 절기에 따른 태양 방위각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며 “이번 행사로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증거를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 신라의 기준시 혼효중성을 찾아라

해가 떨어지자 밤하늘의 별이 관측팀을 반긴다. 이들은 오후 7시부터 두 시간 동안 천체 관측을 통해 신라시대 밤하늘을 상상해본다. 가장 중요한 별은 역사 기록에 나온 ‘혼효중성’이다. 전 연구원은 “신라시대 사람들은 혼효중성을 관측해 각 절기를 예측했다”며 “일종의 기준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혼효중성은 혼중성과 효중성으로 나뉜다. 혼중성은 혼시, 즉 해가 질 무렵에 자오선을 따라 정남쪽에 있는 별이다. 효중성은 해 뜰 무렵(효시) 정남쪽에 있는 별이다. 혼효중성은 시대에 따라 위치가 조금씩 달라진다.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이 약 2만6000년을 주기로 조금씩 방향을 바꾸는 세차운동 때문이다. 세차운동 때문에 별의 위치는 1년에 약 50초(1초는 3600분의 1도)씩 동쪽으로 이동한다.

전 연구원은 “오늘날을 기준으로 하면 633년 별자리는 지금보다 전체적으로 약 17.8도 서쪽에 있었다”며 “같은 시간이라도 지금은 보이는 별이 당시에는 이미 져 있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걸 역으로 계산하면 633년의 혼효중성을 찾을 수 있다. 2010년 현재 혼중성은 쌍둥이자리의 카스토르 별, 효중성은 작은개자리 프로키온 별이다. 이 별을 중심으로 별자리 지도를 그린 뒤 서쪽으로 17.8도 돌리면 633년의 별자리 지도를 알 수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별자리 지도의 모양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관측에 앞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633년 3월 22일의 혼중성은 게자리 4번별, 효중성은 궁수자리 1번별로 추정됐다.

조선시대에 만든 소간의는 휴대용 관측기기로 별의 운행과 위치, 고도와 방위각을 측정하는 데 사용됐다. 사진 제공 한국천문연구원
조선시대에 만든 소간의는 휴대용 관측기기로 별의 운행과 위치, 고도와 방위각을 측정하는 데 사용됐다. 사진 제공 한국천문연구원
○ “화성이 게자리에 근접하면 반란”

관측은 오후 11시까지 계속된다. 신라 시대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행성의 위치나 혜성과 유성의 출현 등을 고대 점성술로 풀이해 보는 게 목적이다. 관측팀은 신라시대 문헌이 남아 있지 않아 고려사 천문지나 조선시대 세종 때 중국 점성술을 정리한 천문류초 등을 이용할 계획이다.

관측팀은 이날 화성이 귀자리(현재 게자리)에 가까워지고 토성이 태미원(현재 처녀자리 근처)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 연구원은 “신라의 천문관원이 보았다면 질병이나 병란을 뜻하는 화성이 사망이란 뜻을 지닌 귀자리에 근접했기 때문에 반란이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 수 있다고 왕에게 보고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연구원은 “신라 천문관원의 입장이 돼 왕에게 보고할 천체현상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라며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천문학 체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천문연 박석재 원장은 “첨성대를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첨성대를 이용한 천문활동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이번 활동은 첨성대가 갖고 있는 의미를 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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