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미디어/다윈을 따라서]갈라파고스 프로젝트<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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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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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방문 175년… ‘생명의 땅’이 앓고 있다
‘진화의 부리’가진 핀치새 근처만 가도 겁먹고 푸드덕
“생명교감 기대무산 아쉬워”
항구엔 관광용 데크 즐비, 숯불 고기굽는 냄새 진동도

보호색으로 위장해 바위틈에 숨어있는 이구아나 한 마리를 권영인 박사가 살펴보고 있다. 이구아나는 갈라파고스의 명물로 전체 길이가 1∼2m나 된다. 대형 도마뱀으로 성질이 온순하고 새싹이나 과실 등 식물을 먹고 산다.
보호색으로 위장해 바위틈에 숨어있는 이구아나 한 마리를 권영인 박사가 살펴보고 있다. 이구아나는 갈라파고스의 명물로 전체 길이가 1∼2m나 된다. 대형 도마뱀으로 성질이 온순하고 새싹이나 과실 등 식물을 먹고 산다.

다윈의 항로를 따라 항해하는 권영인 박사(49)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진화론의 발상지인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지난해 11월 28일. ‘장보고 주니어’호를 타고 들어온 권 박사 일행을 맞은 것은 해변의 바다사자 가족이었다.

새끼 한 마리를 갓 낳은 어미 사자는 ‘大’자로 드러누워 ‘산후조리’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날개 길이 1m가 넘는 군함새 10여 마리가 20cm 크기의 새끼 바다사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새끼를 잡아먹나 했더니 새끼가 벗어놓은 누런 태반을 먹기 위해 경합을 벌였다. 태반을 낚아채 달아나던 군함새가 또 다른 동료의 공격에 먹이를 바다로 떨어뜨렸다. 물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펠리컨이 태반을 잽싸게 물어 삼켰다. 진화론의 바탕원리인 생물들의 치열한 경쟁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 싸움의 와중에도 갓 태어난 바다사자는 어미의 품을 파고들며 눈도 못 뜬 채 젖을 빨았다.

○ 인간의 손을 탄 동물의 낙원


그러나 진화론의 발상지가 된 ‘생명의 원점’ 갈라파고스는 많이 변해 있었다. 175년 전 찰스 다윈이 이 땅을 밟았을 때의 감흥을 느껴보려는 권 박사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윈이 부리 모양의 차이를 보고 진화론을 도출했던 핀치새. 사람을 몰랐던 핀치는 권 박사가 부리를 보려고 4, 5m 앞으로만 다가가도 나무에 있다가 모두 날아가버렸다. 권 박사는 “170여 년 만에 사람을 무서워하는 잠재의식이 어떻게 유전될 수 있었을까”라며 아쉬워했다. 갈라파고스 생물들이 이제 사람의 손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매년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으면서 갈라파고스의 관광수입은 본국인 에콰도르 전체 외화수입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주민들의 수입도 본토의 2, 3배가 넘다 보니 30년 전 2000명 정도이던 인구가 3만 명으로 급증했다.

사람의 발길을 따라 쥐나 염소 등 외래종이 유입되면서 진화론의 근거가 됐던 갈라파고스 고유 생물들은 터전을 잃었다. 식용으로 들여온 염소가 풀을 다 뜯어먹어 자이언트거북은 먹이가 부족해졌다. 갈라파고스란 섬 이름은 스페인어로 거북이란 뜻. 자이언트거북은 이 섬의 상징이다.

거북에게 또 다른 수난이 닥쳤다. 지구 온난화다. 지온이 29도가 넘으면 거북 알이 대부분 암컷으로 부화되기 때문에 이상고온 현상은 거북의 성비를 교란시킨다. 14종이던 거북이 최근 11종으로 줄어들 만큼 멸종 위기에 처하자 갈라파고스 국립공원은 전문센터를 만들어 그 안에서 거북을 키우고 있다.

권 박사는 “이상고온은 거북들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항해를 하는 우리에게도 재앙”이라고 했다. 권 박사 일행은 배 위에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톡톡히 실감했다. 통상 해수 온도가 26도 이하면 허리케인이 발생하지 않는다. 10월 말 수온은 보통 25도 이하로 떨어져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하지만 11월 멕시코 출항 당시 바다 온도는 30도였다. 실제로 출발 직전 풍속 265km의 허리케인 ‘릭’이 불어닥쳐 배가 떠내려갈 뻔했고, 항해 중 강풍을 만날 때마다 허리케인이 아닐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 쉴 곳 잃은 바다제비 보며 동병상련


센터 안에 갇혀있던 거북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권 박사는 “생물과의 교감을 기대하고 갈라파고스에 왔는데 배에서 만난 바다제비와의 인연만 못하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밤새 파도와 싸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참새만 한 바다제비가 배 위에 날아들었다. 제비는 배 위를 서너 바퀴 돌며 선원들의 눈치를 보더니 갑판 난간에 내려앉아 날개에 머리를 묻고 잠이 들었다.

반경 수백 km 이내에 섬이 전혀 없고 파도가 높아 쉴 곳을 찾지 못했던 바다제비는 얼마 뒤 깨어나 아예 선실로 내려가 테이블 위에서 본격적으로 숙면에 들어갔다. 전날 밤 배 안에서 공포에 떨었던 권 박사는 잠든 바다제비를 보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권 박사나 바다제비나 기댈 건 자연의 자비뿐이었다. 이튿날 아침 바다제비는 권 박사 머리 위로 날아올라 세 바퀴쯤 돌더니 다시 바다로 날아갔다.

하지만 갈라파고스에서는 권 박사가 기대한 자연과의 교감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길가의 벤치도 바다사자가 비워둔 자리만 사람이 앉을 수 있다”던 현지인의 설명은 현실과 달랐다.

권 박사의 배가 정박한 산크리스토발 섬의 항구는 갈라파고스 주지사의 공약에 따라 건립된 관광용 데크로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본래 그곳에서 살던 바다사자들은 항구 주변에 방치된 난파선에 자리를 잡았다. 거리에는 각종 고기를 숯불에 놓고 드라이어로 구워 파는 노점이 즐비했다. 진화론이 탄생한 ‘생명의 땅’에서는 저녁만 되면 골목마다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 메탄 밀집지역 발견 성과도


하지만 예기치 못한 성과도 있었다. 권 박사 팀이 갈라파고스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 지난해 11월 27일. 선실에서 실험용 컴퓨터를 보던 권 박사가 ‘배를 세우라’고 다급히 소리쳤다. 바닷물 속 메탄 농도가 표시된 그래프가 위아래로 요동을 쳤기 때문이었다.

“이거 장난 아닌데. 동해에서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나온 곳의 두 배는 되겠어.”

갈라파고스 제도 중 하나인 산크리스토발 섬 동북쪽 해상 30마일 지점에서 메탄 밀집 해저지역을 발견한 것. 해수면에서 측정한 바닷물 속 메탄 양은 일반 해수의 70배인 L당 3.7μmol(마이크로몰). 새 에너지원인 ‘불타는 얼음’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발견된 동해의 해저 2000m 측정값은 2.5μmol이었다. 바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메탄이 많아지는 것을 감안하면 그때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권 박사는 “이렇게 높은 값을 보이는 것은 해저에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있든지, 아니면 화산활동에 의한 작용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만일 이곳에서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발견된다면 권 박사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소속이던 2007년 동해에서 가스 하이드레이트를 발견한 데 이어 해외에서 다시 대체 에너지를 발견하는 셈이다.

권 박사 팀은 3월 말 여수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번 탐사는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이사장 김재철 동원그룹회장)가 지원했으며, 2012여수세계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글·사진=갈라파고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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