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 DNA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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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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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된 남한호랑이 박제서 살점 떼내 유전자 비밀 첫 규명

DNA는 말한다
시베리아종과 같은 종이지만
덩치 작고 줄무늬는 더 선명
러 비해 덜 험한 남한 山적응

‘호랑이는 죽어서 유전자를 남긴다?’

멸종된 남한호랑이가 시베리아호랑이와 같은 종(種)이지만 서식 환경에 적응해 형질(形質) 특성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전남 목포시 유달동 유달초등학교에 전시돼 있는 호랑이 박제 젖가슴 살점으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16일 밝혔다. 이 박제 호랑이는 계통 특성을 나타내는 유전자 1240개 가운데 2개가 시베리아호랑이와 차이를 나타냈다. 북쪽에서 서식하는 시베리아 종보다 덩치가 작고, 털 색깔도 갈색이나 붉은빛이 더 많았다. 줄무늬도 시베리아 호랑이보다 더 굵고 선명했다. 한상훈 국립생물자원관 척추동물연구과장은 “러시아 등 북쪽지방에 비해 험한 산이 없고 활엽수가 많고 눈이 적게 오는 한국 지형에 적응했기 때문”이라며 “내년에 박제에서 확인한 한국호랑이 유전자 정보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남 목포시 유달동 유달초등학교 교무실 앞 복도에 전시돼 있는 남한호랑이 박제. 국립생물자원관은 이 박제에서 떼어낸 젖가슴 살점으로 남한호랑이의 유전자 비밀을 밝혀냈다. 사진 제공 전남도교육청
전남 목포시 유달동 유달초등학교 교무실 앞 복도에 전시돼 있는 남한호랑이 박제. 국립생물자원관은 이 박제에서 떼어낸 젖가슴 살점으로 남한호랑이의 유전자 비밀을 밝혀냈다. 사진 제공 전남도교육청
박제 호랑이의 유전자 분석은 남한호랑이의 유전자 표본을 제시한 것으로 국내 호랑이 복원사업이나 계통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호랑이는 서식지역에 따라 8개종으로 분류된다. 8개종 중 덩치가 가장 큰 시베리아호랑이는 현재 북한, 중국, 러시아 동북지역에 500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달초등학교 박제 호랑이는 1908년 2월경 전남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 인근에 농부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는 바람에 잡혔다. 함정이 깊어 빠져나오지 못한 호랑이는 먹이를 먹지 못해 죽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호랑이는 암컷으로 열 살 안팎이고 몸통 길이 160cm, 신장 95cm, 몸무게 180kg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국에 살던 일본인 하라구치 쇼지로(原口庄次郞) 씨가 이 호랑이를 사들여 박제로 만든 뒤 유달초등학교에 기증했다. 요즘에도 일제강점기에 이 학교를 다닌 일본인 졸업생들이 한 해 평균 5차례 이상 호랑이 박제를 보기 위해 찾고 있다.

목포=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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