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플루 무조건 달라”

  • 입력 2009년 8월 26일 02시 55분


전국에 ‘신종플루 공포증’… 병원마다 처방요구 폭주

“신종 인플루엔자A 같은데 왜 약을 안 주나요.”

25일 서울 강남의 한 의원. 40대 중반의 남성 환자가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는 감기 같다며 해열제를 처방하겠다고 했지만 환자는 항바이러스제를 달라는 요구를 꺾지 않았다. 의사는 “그러면 다른 병원에 가 보라”며 환자를 돌려보냈다. 서울 중구의 한 의원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환자는 “중국에 가야 하는데 타미플루를 미리 먹어야겠다”며 처방을 요구했다. “정부 지침에 따라 약을 처방할 수 없다”는 의사의 설명에 환자는 화를 내며 병원 문을 나섰다.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심리적 공포증이 신종 인플루엔자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 시내의 한 신종 인플루엔자 거점병원에는 24일과 25일 150여 명의 의심환자가 몰렸다. 이 가운데 타미플루를 처방받은 사람은 15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감기 환자였다. 이 병원 관계자는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해 달라는 환자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거점병원이 아닌 병원에도 타미플루 처방이 가능한지 묻는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 서울 강북삼성병원 김남이 전문간호사는 “24일 하루에만 80통 이상의 신종 인플루엔자 문의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신종 인플루엔자가 검색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타미플루를 처방받을 수 있는 노하우까지 전수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전 국민 가운데 타미플루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20%도 안 되기 때문에 빨리 약을 처방받아야 한다”며 “미리 약을 받아 냉장고에 넣어두면 유통기한도 늘릴 수 있어 별 걱정이 없다”고 주장했다.

백신이 11월 중으로 공급되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공포증을 부추기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백신에 넣을 원액의 양을 세밀하게 결정하지 못한 사실이 와전된 것. 녹십자는 이에 대해 “다음 달 7일부터 임상시험에 돌입하고 11월 중순에 백신을 생산한다는 계획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신종 인플루엔자 공포증에 휩싸이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철저히 대응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한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신종 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불안해하는 것도 사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정훈 소아과 원장은 “보건소가 고혈압 비만치료 등 기존 업무를 일시 중단하고 학교와 유치원을 찾아 손 씻기 등 위생교육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승철 국가신종인플루엔자대책위원회 위원장(삼성서울병원 교수)은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 3000여 명 가운데 2명을 제외한 나머지 환자는 완쾌되고 있는데도 부정적인 면이 너무 부각된 측면이 있다”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신종 인플루엔자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으므로 공포증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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