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술 80%…초고압-초저온-초청정 ‘우주항구’

  • 입력 2009년 6월 11일 02시 55분


통제센터-발사지휘소가 한곳에
눈앞에 성큼 다가온 ‘우주시대’
내달 30일 전세계 눈은 ‘나로’로

나로우주센터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전남 여수공항에서 자동차로 2시간을 달려야 한다.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다리를 지나 10분가량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도 지나쳐야 한다. 한국이 우주 선진국으로 가는 길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우주 기술 불모지’라는 악조건을 이겨내고 나로우주센터가 마침내 위용을 드러냈다.

○ 첨단 IT 기술력은 외국 우주센터보다 앞서

“발사지휘소와 발사체 통제센터를 한 건물에 있도록 설계한 경우는 세계에서 나로우주센터가 처음입니다.”(민경주 나로우주센터장) 대개 발사체 통제센터는 발사장 인근 지하에, 발사지휘소는 이보다 떨어진 위치에 짓는 것이 관례다. 발사체는 강한 폭발력을 지닌 연료를 갖고 있는 데다 발사 순간 섭씨 3000도가 넘는 열을 뿜어내기 때문에 통제센터는 보통 발사대 인근 지하에 벙커를 만들어 세운다.

하지만 나로우주센터는 발사체 통제센터와 발사지휘소가 발사통제동에 함께 있다. 발사통제동은 발사대에서 2km나 떨어져 있다. ‘IT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첨단 통신 기술로 거리의 한계를 극복한 것.

나로호를 무(無)진동 차량에 수평으로 눕혀 발사장까지 끌고 가는 점도 특이하다. 발사대까지 500여 m의 꼬불꼬불 가파른 오르막길을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 수직 이동 대신 수평 이동 방법을 택했다. 발사체를 수평으로 조립한 뒤 수직으로 일으켜 세워야 하기 때문에 수평조립이 수직조립보다 더 어렵다.

○ 국내 기업은 나로우주센터의 숨은 공신

국내 기업의 활약도 돋보인다. 민 센터장은 “러시아 기술 의존도가 높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로우주센터 건설 기술의 80%는 국산”이라고 밝혔다.

우선 현대중공업이 발사장과 발사대 건설을 담당했다. 발사체가 중력을 이겨내고 우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발사대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 단순한 지지대 이상의 견고함과 정밀함은 필수. 현대중공업은 러시아에서 공수받은 발사대 상세 설계문서를 ‘한국형’으로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A3 용지 크기 2만1631장의 설계문서를 한 장씩 변환하는 작업에만 꼬박 8개월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국내 최초로 초고압·초저온·초청정 기술도 개발했다. 발사대에는 대기압의 400배를 견디는 초고압 배관이 문어발 모양으로 1.5km 깔려 있다. 영하 276도의 액체 헬륨을 주입할 수 있는 초저온 기술도 최초로 접목됐다. 공기 내 수분과 먼지를 거의 없애는 초청정 기술도 활용됐다. 민 센터장은 “현대중공업의 ‘전공’인 조선 기술과 연계하면 바다 한가운데서 발사체를 발사하는 시론치 시스템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로호 조립은 대한항공이 전담했다. 항공기 개발과 조립에서 베테랑인 대한항공도 우주발사체 조립은 처음 시도해본 낯선 경험이었다. 대한항공은 나로호를 발사대까지 끌고 올라가는 수송수단 2기도 특별히 제작했다.

한화는 나로호의 추진 계통 제작에 참여했다. 전통적인 화약 기업의 명성에 걸맞게 액체추진제 공급과 킥모터 제작 등을 담당했다. SK와 팝엔지니어링은 발사통제시스템에 필요한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 2018년 ‘나로 2호’ 탄생지

나로우주센터 건립의 가장 큰 성과는 기술 축적이다. 사업 초반 한국을 ‘초짜’라며 무시했던 러시아는 이젠 ‘동반자’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발사대 시스템을 담당한 러시아 설계회사인 KBTM은 최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발사장에 새로운 발사대를 지어야 하는데 컨소시엄을 만들어 같이 해보자”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현대중공업 측에 제의했다.

앞으로 나로우주센터는 국내 우주개발 중심지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나로우주센터는 나로호 다음 단계로 무게 1.5t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한국형 우주 위성발사체(KSLV-Ⅱ)를 100%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드는 중대한 임무를 맡았다. 이를 위해 나로우주센터는 추진기관시험동을 추가로 설치해 발사체 추진기관의 각종 기능을 점검하고 연소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 미리 본 우주센터 위성발사 순간

▼“3, 2, 1… 발사” 동시에 레이더동 비행궤적 추적

발사통제동 ‘관제탑’ 역할 궤도진입 전과정 체크▼

한국 최초 우주 위성발사체(KSLV-Ⅰ) 나로호 발사가 다음 달 말로 성큼 다가왔다. 발사 당일 나로우주센터는 어떻게 움직일까. 나로호 발사 상황을 가정한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나로우주센터의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나로우주센터 동남쪽 끝에 있는 높이 33m의 발사대. 해발 110m 마치산 암반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초대형 태풍보다 센 초속 70m의 강풍이 불어와도 끄덕없도록 설계됐다. 주변에는 높이 75m의 낙뢰방지시스템(피뢰침)도 3개나 설치됐다. 나로호는 기상관측소의 기상자료 분석 결과가 발사 조건에 100% 맞아떨어져야 발사할 수 있다. 가령 바람이 초속 15m 이상 불면 발사를 연기해야 한다.

발사 17분 전, 어젯밤 발사대에 도착한 나로호를 장착한 채 발사대가 서서히 수직으로 몸을 일으킨다. 이어서 카운트다운. “스리, 투, 원, 발사!” 굉음과 함께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나로호가 하늘로 솟구친다. 광학장비동의 초고속 카메라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촬영한다. 카메라가 촬영한 발사장면은 앞으로 탄생할 제2, 제3의 발사체 개발에 유용한 자료로 활용된다.

추적레이더동과 제주추적소의 원격자료수신장비도 발사체의 위치 추적을 시작한다. 이들 장비는 나로호의 비행 궤적을 발사통제동에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나로호는 발사 직후 20초간 900m를 수직으로 올라간 뒤 정남향에서 10도가량 동쪽으로 기울어져 일본 오키나와 섬 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제는 발사대에서 2km 떨어진 발사통제동이 긴장해야 할 순간이다. 발사통제동은 공항의 관제탑처럼 나로호 발사의 전 과정을 통제하는 사령부. 추적레이더동에서 보낸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송되자 더욱 긴장된 분위기다. 만일 나로호가 정상궤도를 벗어나면 안전을 위해 발사체를 폭파시켜야 한다. 다행히 나로호는 정상 궤도로 빠르게 날아가고 있다.

약 4분 뒤 나로호의 1단 로켓이 분리된다. 1단 로켓은 우주센터에서 남쪽으로 1700km 거리에 있는 필리핀 동남쪽 공해상에 떨어진다. 태평양 공해상에 파견된 제주해경 소속 3002경비함에 설치된 원격수신 장비가 분리 순간을 포착해 우주센터로 전송한다.

발사 후 9분이 지나자 로켓 상단 표면에 장착된 화약이 터지며 위성이 저궤도에 진입한다. 2단 로켓이 분리된 것이다. 이 로켓은 우주에서 궤도를 돌다가 몇 년 뒤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불타 없어진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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