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이 불시착했다… 혹한 뚫고 전원 살아서 귀환하라”

  • 입력 2008년 2월 11일 03시 02분


2일 예비우주인 이소연 씨(오른쪽)가 눈 덮인 숲에 불시착한 소유스 우주선에서 나와 야영할 채비를 하고 있다. 셸콥스키=안형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2일 예비우주인 이소연 씨(오른쪽)가 눈 덮인 숲에 불시착한 소유스 우주선에서 나와 야영할 채비를 하고 있다. 셸콥스키=안형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고산 씨(왼쪽)가 지난달 31일 혹한기 지상 생존훈련 도중 구조대에 조난신호를 보내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셸콥스키=안형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고산 씨(왼쪽)가 지난달 31일 혹한기 지상 생존훈련 도중 구조대에 조난신호를 보내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셸콥스키=안형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고산-이소연씨 ‘숨가쁜 생존훈련’… 러시아 단독 동행취재

《한국 우주인의 혹한기 지상 생존훈련은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우주인 3명이 영하 60도에서도 견딜 수 있는 특수방한복을 갈아입고 나오면서 시작됐다. 고산 씨와 팀을 이룬 사람은 러시아 우주인 노비츠키 올레크 씨와 세로바 옐레나 씨. 이들은 모두 지난해 가가린우주센터에 입교한 새내기 우주인이다.

“올레크, 나 울리체 홀로드노(올레크, 밖이 추워)?”

“네트 노르말리노. 비호지체(그렇게 춥진 않아. 어서 나와).”

고 씨가 추위를 의식한 듯 질문을 던지자 러시아 우주인이 고 씨에게 빨리 나오라고 재촉했다.

소유스 우주선은 며칠 동안 내린 폭설로 사방이 하얗게 뒤덮인 숲 사이에 ‘생뚱맞게’ 엎어져 있었다. 》

식량은 이틀치뿐… 비스킷 씹으며 허기 달래

구조대 신호에 모닥불 피우고 신호탄 터뜨려

부상동료 낙하산에 싣고 눈밭 달려 목적지로

○물 비상식량 무전기 신호탄만 제공

한국 우주인이 타고 우주로 올라갈 소유스 우주선은 지구로 귀환할 때 낙하산에 매달려 초원지대에 착륙한다. 하지만 귀환 도중 기상이 악화되거나 우주선에 이상이 생기면 예상 착륙지점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에 불시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소유스 우주선은 예상 착륙지점에서 700km 떨어진 우랄산맥 한가운데 불시착한 사례가 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우주인들은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우주인들은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며 구조대와 연락이 닿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번 겨울철 생존훈련에서도 우주인에게 고작 이틀 치 비상식량과 물 6L, 그리고 무전기와 신호탄만 제공됐다.

우주선 선장 역할을 맡은 올레크 씨가 우주선 밖으로 나오자마자 무전기로 구조신호를 보냈지만 묵묵부답이다. 그 사이 고 씨와 옐레나 씨는 피난처를 만들었다.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ㄷ’ 자 모양으로 벽을 만들고,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 위해 우주선에서 떼어낸 낙하산을 바닥에 깔았다.

날이 저물자 기온은 영하 15도로 뚝 떨어졌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도 금세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세 사람은 모닥불 둘레에 모여 앉아 초콜릿과 비스킷, 그리고 트보로크(우유로 만든 러시아 전통음식)로 허기를 달랬다.

고 씨는 비상식량 주머니 안에서 찾은 홍차를 끓여 마신 후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 씨가 몸을 부르르 떨며 잠에서 깼다. 낮에 나무를 하는 동안 땀에 젖었던 내복이 밤이 되자 차가워지며 체온을 급격하게 떨어뜨린 것. 모닥불 옆에서 옷을 말리던 고 씨는 방한복을 벗어 옆에서 잠을 뒤척이는 옐레나 씨에게 덮어 줬다.

○생존력―협동심 평가하는 인디언텐트

이튿날 아침. 세 사람이 나무와 낙하산 천을 이용해 높이 3m 원뿔 모양의 인디언텐트를 짓기 시작했다. 가상의 상황이지만 조난이 장기화됐다는 뜻이다.

고 씨는 “몇 년 전 한 미국 우주인이 러시아에서 생존훈련을 받을 때 이 텐트를 처음 지었는데 그 쓸모에 감탄한 러시아가 이를 아예 생존훈련 프로그램에 넣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몇 시간 뒤 텐트는 대충 모양을 갖춘 듯했다. 하지만 텐트 안에 모닥불을 피우자 나무가 타며 내뿜는 매운 연기가 텐트 안에 가득 찼다. 고 씨는 연기가 위로 잘 빠져나가도록 텐트 꼭대기에 구멍을 내고, 공기가 잘 통하도록 텐트를 둘러싼 낙하산 천 가운데 부분을 트자고 제안했다.

날이 저물도록 텐트 ‘보수작업’이 이어졌다. 완성된 텐트 안에 직접 들어가 보니 제법 훈훈했다. 하루 종일 눈밭에서 ‘집짓기’로 씨름했던 우주인들은 텐트 안에서 곧 너부러졌다.

때마침 무전기에 구조대의 신호가 잡혔다. 고 씨는 텐트 밖으로 나가 모닥불을 피우고 신호탄을 터뜨려 피난처의 위치를 알렸다. 올레크 씨가 무전기로 구조 헬리콥터와 이튿날 만날 장소를 정했다.

동이 트기가 무섭게 이들은 짐을 챙겨 눈밭으로 나섰다. 이번 훈련의 마지막 관문은 우주인 가운데 한 명의 다리가 부러진 상황을 가정해 접선지역까지 40분 안에 옮기는 것. 1km도 채 안 되는 거리지만 눈밭에서 몸무게 70∼80kg의 성인을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고 씨는 능숙한 솜씨로 환자 역할을 맡은 러시아 동료의 다리를 응급처치하고 그를 낙하산에 눕혔다. 그렇게 낙하산을 끌고 눈밭을 헤쳐 달리기를 10여 분. 얼굴이 땀으로 흥건히 젖은 채 목적지에 도착한 이들은 신호탄을 터뜨리며 훈련을 마쳤다.

○“동료 코고는 소리 빼면 어려움 없어”

고 씨가 훈련을 마친 뒤 예비우주인 이소연 씨도 러시아 공군조종사 출신 우주인 2명과 팀을 이뤄 생존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을 시작한 첫날 밤 폭설이 내려 관계자들이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이 씨는 “잠을 잘 때 동료 우주인의 코고는 소리가 심했다는 점만 빼면 훈련 과정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이번 훈련에 의료담당으로 참여한 공군 항공우주의료원 안창호 소령은 “추운 날씨에서도 두 사람 모두 건강에 아무 이상 없이 훈련을 소화했다”며 “러시아 측에서 훈련을 잘 치른 팀의 경우 가장 가벼운 우주인을 환자로 정하는데, 두 팀 모두 가벼운 여자 우주인을 환자로 정했다”고 귀띔했다.

셸콥스키=안형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utnow@donga.com

■ 한국 우주인 올해 일정

△1월 30일∼2월 4일: 혹한기 지상 생존훈련

△2월 26일∼3월 4일: 정밀건강검진

△3월 19일: 우주인 고산 씨 탑승 여부 최종 판정

△3월 26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로 이동

△4월 7일: 우주인 기자회견

△4월 8일 오후: 고산 씨와 러시아 우주인 2명으로 이뤄진 탑승팀 발사장으로 이동. 소유스호 탑승

△4월 8일 오후 8시: 소유스호 발사. 예비우주인 이소연 씨, 고산 씨와의 교신 위해 모스크바 인근 임무통제소(MCC)로 이동

△4월 10∼18일: 국제우주정거장(ISS) 도착. 7, 8일간 체류하며 임무 수행. 기자회견

△4월 19일: 지구로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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