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받으러 와도 머물 곳 없어…낫기는커녕 악화되는 듯”

  • 입력 2007년 11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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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고 시달리는 지방 암환자들

경북 경주시에 사는 최성규(46) 씨는 지난해 5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았다. 그 후 최 씨는 2주마다 한 번씩 외래진료를 받기 위해 이 병원을 찾는다. 그는 상경할 때마다 마땅한 숙소가 없어 하루 이틀씩 친한 후배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1년 6개월째 불안정한 서울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그는 “병이 낫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는 기분”이라며 “암 환자가 많이 찾는 서울의 대형 병원들은 환자들이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로 오는 암 환자는 급속히 늘고 있지만 이들이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은 크게 부족하다.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게 되면 대부분 1, 2주마다 방사선 치료나 정기 검사를 받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일단 서울 소재 병원에서 한 번 진료를 받고 나면 정기적으로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서울에 친지나 친구가 있는 환자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병원 대기실 소파에서 밤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한 달 전 폐암 2기 판정을 받은 윤모(60·경기 수원시) 씨는 매주 금요일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목요일마다 서울에 올라와 병원 대기실 소파에서 잠을 잔다.

초기 암 진단을 받은 지방 환자들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이들은 15∼20일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장기 투숙을 할 수 있는 여관이나 찜질방을 전전하고 있다. 이런 경우 감염 등 또 다른 질환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환자들은 병원 측에 근처에서 머물며 치료받을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소아암, 유방암 등 일부 암의 경우 서울 대형 병원 근처에 환자 숙소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주변에는 유방암 환자를 위한 숙소가 마련돼 있다.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주변에는 소아암 환자를 위한 무료 숙박시설이 있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은 대형 병원 인근에서 서울 2곳, 지방 3곳 등 총 5곳의 백혈병 어린이 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1년 전 서울대병원 유방암환우회와 함께 환자용 숙소 ‘비너스쉼터’를 마련한 노동영 서울대병원 유방센터 교수는 “머무를 곳이 없는 지방 환자들이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숙소 마련이 절실하다”면서 “환자들은 이곳에 모여 김장도 담그고 정신적 위안도 얻는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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