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한국 영화가 눈에 띈다. ‘해부학교실’에서는 해부학 실습용 시신을 일컫는 ‘커대버(cadaver)’가 살아 움직인다. ‘리턴’에서는 수술 진행 중에 의식이 돌아오는 ‘수면 중 각성’의 충격으로 살인마가 탄생한다. ‘검은 집’에서는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사이코패스(Psychopath)’가 등장한다. 영화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어느 정도의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이들 영화에서 소개된 의학 지식 가운데는 정확하지 않은 것들도 꽤 있다. 의학적 측면에서 이들 영화의 허와 실을 알아본다.
○ 젊은 시신은 사고사-자살이 대부분… 실습용으론 부적합
‘해부학교실’에 등장하는 커대버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시신이다. 피부 밑으로 흐르는 파르스름한 정맥, 메스를 대자 주르륵 흘러내리는 액체가 스크린 속에서 생생하게 표현된다. 영화사가 특수 제작한 커대버가 사용됐다.
그러나 실제로 의대생들이 실습용으로 사용하는 커대버 중에서 젊은 커대버는 극히 드물다. 노환 또는 지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이 대부분이다.
이는 해부 실습용 커대버는 외견상 훼손이 되지 않은 상태여야 하기 때문. 젊은 사람의 시신은 사고사나 자살로 인한 경우가 많다. 사고사라면 사고로 인해, 자살이라면 부검으로 인해 시신이 많이 훼손된 상태가 대부분이다. 병원의 시신 기증 담당자들은 “젊은 커대버는 몇 년 만에 한 구 정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커대버 중 80%가 변사자나 무연고자’라는 영화 포스터의 문구도 사실은 잘못됐다. 유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시신은 커대버로 쓸 수 없다. 과거에는 무연고자의 시신을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기증된 시신만이 커대버로 사용된다.
실제로 커대버는 파란 정맥도 보이지 않는다. 피를 완전히 빼고, 썩지 않도록 방부액을 주입하기 때문에 정맥이 파란색을 띠지 않는다.
또 영화 속에 등장하는 커대버는 혈색이 좋은데 실제 커대버는 오래된 통나무 같은 누르스름한 색깔을 띤다.
○ 수술 중 각성? 마취가 안된 거겠지…
개봉을 앞둔 ‘리턴’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수술 중 각성’ 상태를 경험하고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 때문에 차가운 살인마로 성장한다. 수술 중 각성은 말 그대로 수술이 진행되는 도중 의식이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수술 중 각성 현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에서는 1000명 중 1, 2명이 수술 중 각성 상태를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수술 중 각성은 고령의 중환자나 체력이 약해 마취약을 많이 투입할 수 없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제왕절개를 하는 임신부도 간혹 경험한다. 배 속의 아기 때문에 마취제를 많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수술의 모든 통증을 느끼지만 몸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될 가능성은 극히 드물다. 강력한 마취 상태이기 때문에 통증은 느끼지 못하며 수술 도중 사람의 말소리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또렷하게 듣기는 더욱 힘들다.
전문가들은 “의식이 있고 통증을 느끼는 것은 수술 중 각성 상태가 아니라 마취가 제대로 안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사이코패스’란 용어는 이제 책 속에나…
사이코패스는 우리 주변에서 상당수 찾아볼 수 있다. 보통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짜 이름을 사용하고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을 속이는 사기성을 가지고 있다.
최근 정신의학계에서는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를 자주 쓰지 않는다. 대신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된다.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는 1891년 독일 의사 코흐가 처음 소개했는데 그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거듭되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도움말=권준수 서울대 정신과학교실 교수, 임영진 서울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김인관 서울대병원 시신기증상담실 직원)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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