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쪽 핏줄이 더 당긴다?…이종사촌에 대한 친밀감 가장 높아

  • 입력 2007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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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한 아파트에 불이 난 광경을 목격했다.

순간적으로 그 아파트에 사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기꺼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사촌을 구하겠는가.’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미국인은 자신과 사촌의 유전적인 연결고리가 얼마나 확실한가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종사촌>외사촌=고종사촌>친사촌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데이비드 버스 교수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전중환 씨는 삼촌(백부 또는 숙부)의 자식인 친사촌, 고모의 자식인 고종사촌, 외삼촌의 자식인 외사촌, 이모의 자식인 이종사촌과 ‘나’의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이타적인 행동의 정도를 예측하는 수학모델을 만들었다. 내가 위험에 처한 사촌을 도와줄 의향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 결과 이종사촌을 도와줄 의향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외사촌이나 고종사촌을 돕고 싶은 정도는 같게 나왔다. 친사촌을 도와줄 의향은 상대적으로 가장 적었다.

연구팀은 실제로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사촌을 둔 미국 대학생 195명을 뽑아 사촌에 대한 이타적 행동의 정도를 조사했다. 사촌을 돕기 위해 얼마나 위험을 감수하겠는지, 얼마나 자주 연락하는지,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 등을 묻고 1∼7의 척도로 대답하게 했다.

조사 대상자와 사촌의 나이 차나 사는 거리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통계처리한 다음 답변을 분석한 결과 흥미롭게도 수학모델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이 연구결과는 ‘왕립학회보 B: 생물과학’ 2월 28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 같은 핏줄 가능성 높을수록 친밀

자기 몸에서 직접 자식을 낳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아내가 낳은 아이가 자기 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을 수 있다. 이를 진화심리학에서 ‘부성(父性) 불확실성’이라고 부른다. ‘엄마의 아기, 아빠의 아마(Mother′s baby, father′s maybe)’라는 말이 바로 이 의미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류가 중요한 당면 문제를 잘 해결하도록 ‘설계’된 마음을 갖고 진화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은 마음은 오랜 자연선택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제거됐을 거라는 얘기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자식을 덜 보살피는 현상을 ‘부성 불확실성’으로 설명한다. 내 자식이 아닐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부성애는 평균적으로 모성애에 못 미친다는 것.

이번 조사가 사촌에 대한 사회적 행동에도 ‘부성 불확실성’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가장 도와주고 싶은 상대로 나타난 이종사촌은 혈연관계에서 ‘나’와의 연결고리가 가장 확실하다. ‘나’와 이종사촌은 같은 자매에게서 태어난 자식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사촌의 경우 불확실한 연결고리가 두 개나 된다. 나와 아버지 사이에 하나, 삼촌과 친사촌 사이에 또 하나가 있다. 내가 과연 아버지 자식인지, 그리고 친사촌이 과연 삼촌 자식인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외사촌의 경우 외삼촌과 외사촌 사이에, 고종사촌의 경우 나와 아버지 사이에 불확실한 연결고리가 하나씩 있다. 결국 ‘부성 불확실성’이 사촌을 도울 의향이나 정서적 친밀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는 말이다.

전 씨는 “아래 세대가 아닌 같은 세대의 사촌 간에도 ‘부성 불확실성’의 논리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처음 보여 준 결과”라며 “‘부성 불확실성’이 가장 적은 사촌에게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유전자를 더 퍼뜨리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고 말했다. 사촌을 똑같이 대하지 않고 혈연관계에 따라 다르게 대하는 데도 진화심리학적으로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 문화 차이가 사촌 관계에 영향… 한국은 다소 다를 듯

연구팀은 사촌에 대한 한국인의 행동은 미국인과 다소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사촌과 가까운 거리에 살수록 자주 만나 더 친해질 거라고 가정해 사는 거리가 차이나지 않도록 통계적으로 조절했다.

전 씨는 “한국에서는 멀리 떨어져 살아도 제사나 명절 때면 꼭 친사촌만큼은 만나게 된다”며 “어릴 때 사촌을 만나는 빈도가 사는 거리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한국인의 사촌 관계를 진화심리학적으로 분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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