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새해특집]‘과학의 새벽’ 그들이 먼저 맞는다

  • 입력 2007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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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 의대 오일환(47) 교수는 새해 벽두부터 산더미 같은 논문과 씨름해야 한다. 그의 심사를 기다리는 논문이 하루에도 몇 통씩 e메일로 도착한다. 그는 현재 줄기세포 분야의 세계 5대 과학저널 중 하나인 ‘스템셀스’의 편집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각국의 과학자들이 보낸 최신 줄기세포 연구를 심사해 학술지에 게재할지를 결정하는 권한을 쥐고 있는 것이다. 오 교수처럼 권위 있는 과학저널 편집에 참여하는 국내 과학자가 늘어나면서 ‘과학 한국’의 위상이 높아 지고 있다.》

○영향력 있는 저널에 논문을 실어라

과학자들의 업적은 국제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 수로 평가받는다. 그것도 ‘과학논문인용색인(SCI)’에 수록된 학술지여야 한다.

SCI는 미국의 민간 학술정보기관인 ‘톰슨 사이언티픽’이 매년 과학기술 분야의 학술적 기여도가 높은 과학저널을 뽑아 이들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목록을 정리한 데이터베이스(DB).

이 DB에 등록된 다른 저널에 얼마나 많이 인용됐느냐를 나타내는 ‘임팩트 팩터(IF)’가 높은 과학저널일수록 더 권위를 인정받는다. IF가 높을수록 연구자들이 많이 참고했다는 뜻이다.

뒤에 불미스러운 일로 ‘추락’했지만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한때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도 IF가 높은 ‘사이언스’와 ‘네이처’의 표지 논문을 자주 장식했기 때문이다.

논문 게재 여부는 전적으로 이들 저널을 운영하는 편집장과 편집위원들의 몫이다.

과학저널 편집장과 편집위원은 세계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자다. 권위지일수록 저명한 과학자를 편집위원으로 확보하고 있고 편집위원 수도 많다. 사이언스, 네이처 등 유명 저널은 100명이 넘는 편집위원이 활동한다.

○약진하는 한국 과학자들

서울대 기계공학과 최만수(49) 교수는 3년 전부터 ‘에어로졸’ 분야 최고 학술지 ‘에어로졸 사이언스’의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에어로졸은 공기에 떠다니는 분자 수준의 미세물질로 환경 의학 공학 같은 분야의 최신 연구대상이다. 그는 밤새 쏟아져 들어온 메일을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대부분 새로 투고한 논문과, 논문을 검토한 편집위원들이 보낸 평가 내용들이다.

이를 토대로 한 달에 한 번 발행되는 학술지에 게재할 논문을 최종 결정한다. 지난해 이 저널에 투고된 논문 300편 가운데 180편이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다.

최 교수는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최신 연구결과물 중 옥석(玉石)을 가리는 최종 판단자로서 큰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황규영(55) 교수도 3년 전 ‘정보기술의 꽃’이라 불리는 DB 분야의 국제저널 ‘고용량 데이터베이스(VLDB)’의 편집장이 됐다. 황 교수의 판정을 거친 논문은 과학자들은 물론 구글, IBM 등 세계적인 첨단기업에도 제공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과 엄청난 중압감…. 그렇다고 소속 학교나 연구기관이 기존 업무를 빼주지는 않는다. 또 금전적인 보상이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저 “과학이 좋다”며 오늘도 뛰고 또 뛴다.

○‘과학 한국’의 첨병

국제 과학저널에 제출된 논문은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실제 출판까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이 걸린다. 편집위원은 다른 연구자들보다 그만큼 빨리 논문을 보고 최신 연구동향을 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양한 논문을 대하면 과학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4년 전 ‘환경지구화학과 건강’의 편집위원이 된 광주과학기술원 환경공학과 김경웅(43) 교수는 “논문을 심사하면서 주변국 환경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알 수 있다”며 “비슷한 문제가 한국에도 일어날 수 있어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국제 과학저널에 참여하는 과학자가 늘어나면서 ‘과학 한국’의 입지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최만수 교수가 몸담고 있는 에어로졸 사이언스에 논문을 투고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미국 독일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다.

‘플랜트 셀 리포트’는 최근 연세대 김우택 교수가 편집위원에 합류하면서 18명의 편집위원 가운데 2명이 한국인이 됐다. 한국의 연구 수준을 국제 학계가 인정한 결과다.

이 저널의 또 다른 한국인 편집위원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장렬(55) 선임연구부장은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인이 논문을 투고하면 외국인 편집위원들은 트집부터 잡으려 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한국 과학계의 약진을 설명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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