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정훈]중독의 뇌 과학

  • 입력 2006년 12월 2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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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다.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모임이 활발한 때이다. 자연히 사람들의 알코올 섭취가 늘게 된다. 최근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20세 이상 남자의 약 83%, 여자의 약 60%가 술 마시는 인구로 집계돼 있다. 그중 3분의 1 정도는 특히 중독에 빠질 위험이 높은 것으로 분류된다. 사회성 알코올 소비자와 알코올 중독자(알코올의존증 환자)의 차이는 그들이 섭취하는 알코올의 양과 우선 상관이 있지만 흥미롭게도 그들의 뇌에도 차이가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중독환자와 정상인에게 30mL 정도의 맥주를 맛보게 한 뒤 여러 종류의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이때 반응하는 뇌 활동을 영상으로 보여 주는 연구를 했다. 중독환자는 알코올과 관련된 사진을 보여 주면 ‘보상’에 관여하는 뇌 부위가 정상인에 비해 크게 반응했고 동시에 술 마시고 싶은 욕구가 크게 증가됐다. 다른 종류의 사진에는 별다른 반응의 차이가 없었다. 약간의 맥주로 살짝 입맛을 띄운 다음, 관련 사진을 보는 환경 자극만으로도 알코올 중독환자의 뇌는 정상인에 비해 더 강렬하게 술을 원했다.

우리 뇌는 이와 같이 중독성 약물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것과 연관된 환경 자극에 대해서도 반응을 한다. 결국 중독을 온전히 치료하기 위해서는 중독 대상뿐만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환경에서 오는 자극이 더는 환자의 뇌에 갈망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중독 치료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뇌 과학의 최신 이론은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이 약할수록 중독에 빠질 확률이 크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게 보상이 따르는 행동을 선택한다. 그러나 최적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보상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값과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할 위험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

우리 뇌는 이런 상황을 잘 판단할 수 있도록 구조가 짜여 있다. 가령 중독성 약물이나 도박이 주는 일시적이지만 강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뇌 부위가 존재하지만, 우리 뇌에는 또 위험이 따르는 쪽을 피하고 장기적인 결과가 이득을 가져다주는 쪽을 선택하도록 돕는 부위도 있음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이런 부위의 조절 기능이 약화되면 사람은 일시적 만족을 가져다주는 충동적 자극에 쉽게 움직이고 결국 중독에 빠질 확률은 증가할 것이다.

요즘과 같은 연말연시에는 알코올과 같은 중독성 약물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보다 쉽게 조성된다. 중독환자까진 아니어도 알코올을 향한 갈망이 증가되는 환경 속에서 정상인의 뇌는 어떤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게 될까?

현대로 오면서 사람이 중독에 빠지는 대상이 약물, 도박, 쇼핑,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 비록 대상은 달라도 중독을 일으키는 대뇌의 작용기작은 매우 유사하다. 이런 중독 행동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뇌를 바로 알아야만 한다. 좀 더 근원적인 중독 치료를 위해서도 뇌 과학적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며 정당한 노력을 통하여 보상을 얻으려는 행동의 선택은 한 사회가 갖고 있는 건전한 가치관과 교육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대상이 도박이든 약물이든 증가하는 중독환자는 사회 환경이 이런 가치관을 제대로 반영하며 움직이는지를 되묻게 한다.

김정훈 연세대 교수·의대 생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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