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용진]‘카피 약’ 믿고 먹게 만들라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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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청이 발표한 ‘의약품 생물학적 동등성시험 조작사건’은 충격이다. 치료약 101개 품목을 조사한 결과 43개 품목의 시험 결과가 원본 파일과 달랐다고 한다. 이 중 10개 약품은 약품 혈중농도와 흡수율 등이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선진국 진입을 바라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치다.

이 사건 이해를 위해서는 약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오리지널 약’과 ‘카피 약(복제의약품)’이 있다. 오리지널 약은 효과와 안정성이 입증돼 상품화한 신약이다. 카피 약은 오리지널 약의 특허기간이 끝나 다른 제약사들이 화학적 성분과 함량을 같게 제조해 같은 약효를 내도록 한 약이다. 주성분은 같지만 첨가제 등이 달라 약효가 다를 수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성시험)’이란 카피 약의 약효가 신약과 같은지를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다. 검사약과 대조약을 사람에게 먹인 후 약물의 혈중농도를 측정해 약효가 같은지를 보는 것으로 카피 약의 시판 허가를 받으려면 반드시 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생동성시험 논쟁은 2000년 의약분업 시행을 앞두고 본격화됐다. 즉 조제권을 확보한 약계가 “약효가 같은 의약품은 약사가 바꿔줄 수 있도록 대체조제를 허용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약효가 같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논의 결과 생동성시험을 통해 약효 동등성을 입증하기로 했다. 대체조제는 생동성시험을 통과한 것에 한하여 허용되었다.

그렇다면 왜 생동성시험 조작사건이 발생했을까?

첫째, 보험재정 안정화 대책의 하나로 추진된 대체조제 확대가 문제다. 정부는 보험재정에서 약가 지출을 줄이기 위해 대체조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사가 오리지널 약을 처방해도 약사들이 상대적으로 싼 카피 약으로 바꿔 줘야 약가 지출이 준다는 것이다. 대체조제가 확산되면서 제약업체로서는 카피 약을 많이 만들어 빨리 생동성시험을 통과시키려는 유인이 커졌다.

둘째, 생동성시험이 임상시험관리기준에 의해 시행되지 않고 있다. 생동성시험은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선진국에서는 임상시험관리기준의 국제공통기준(ICH GCP)을 따르고 있다. 생동성시험은 의료기관의 입원실에서 실시되고 대부분 의사가 그 책임을 맡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 혈액을 채취하는 등 시험 대상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확성이 떨어지는 문제점도 있다.

셋째, 생동성시험을 통과한 후 사후관리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설령 생동성 시험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사후에 약효가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있고, 그 처벌이 중하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시험 책임자들의 전문가로서의 윤리성이 부족한 점이다. 이번 사건의 연루자들이 어떤 이익이나 목적 때문에 전문가 윤리에 반하는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의 행동은 최근 물의를 빚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과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이번 발표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미 3900여 의약품이 생동성시험을 통과했다. 101개 품목조사만으로 끝낸다면 국민은 나머지 3800개 의약품을 신뢰하지 않을 수 있다. 생동성시험 통과 의약품 전반을 재조사할 필요가 제기된다.

이렇게 시험 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전제로 생동성시험에 대한 국제 수준의 임상시험관리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또 사후관리제도 보완 등이 있어야만 국민은 식약청과 의약품 모두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권용진 대한의사협회 사회참여이사·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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